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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모집책은 일당주고 노숙자·영세민 명의 빌리고…

등록 2006-06-28 19:50

[현장] 판치는 불법 해외송금 실태
하루 4억 가능…‘송금팀’ 전국적으로 100여팀 활동
브로커는 종일 은행 돌며 돈보내

택시기사 김아무개씨는 일당 12만원에 온종일 서울시내 은행 지점을 빙빙 돈다. 우리돈을 달러로 바꿔 중국으로 불법 송금을 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한 지 벌써 2년째다.

김씨 일행이 털어놓은 불법 국외송금 실상은 충격적이다.

김씨를 고용한 송금브로커 왕아무개(중국 출신 동포)씨는 다른 동포들의 통장 수십개를 이용해 매일 거액의 현금을 입금받는다. 왕씨는 김씨와 함께 은행을 돌며 하루 7~8명의 한국 사람을 동원해 1명당 5만달러씩 쪼개 중국으로 송금한다. 증여성 국외송금은 연간 5만달러까지만 증빙서류 없이 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1명이 보내는 돈은 4만9900달러 안팎이다. 왕씨는 명의를 빌려준 한국 사람에게 일당 5만원을 준다. 하지만 한 번 송금한 사람은 1년 안에 다시 송금할 수 없어, 매일 7~8명의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때문에 왕씨는 매일 또다른 한국인 모집책을 통해 사람을 공급받는다. 모집책들은 친인척과 지인들을 동원하고도 모자라, 노숙자들이 모인 곳이나 경로당 등을 돌며 돈이 궁한 영세서민들을 왕씨에게 데려오고 있다.

김씨와 모집책 등이 털어놓은 ‘송금팀(?)’의 규모는 서울에서만 30팀, 전국적으로는 100여팀에 이른다고 한다. 한 팀이 하루에 보내는 불법 송금 규모는 4억원까지이니, 전국적인 불법송금 규모는 최고 400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

현행 외국환거래 규정상 5만달러 이하의 송금은 불법이 아니다. 왕씨처럼 명의를 빌려 불법 송금을 하더라도, 명의대여자가 자기앞수표를 들고 은행 창구에 가서 송금을 하겠다고 하면 이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 1만달러 이상 송금을 하면 국세청에 통보되지만, 이는 향후 세금체납 등의 문제가 생길 때만 조사자료로 활용된다.

은행에서는 몇 번 송금을 해주다가 4만9천달러 안팎의 송금이 반복되면 이를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택시기사 김씨의 말대로 여러 은행 지점들을 돌며 송금을 하므로 큰 어려움은 없다. 일부 은행 지점들은 실적이나 수수료 수입을 의식해 이를 묵인해 주기도 한다. 5만달러를 송금하면 은행 수수료는 50만원이다. 한 모집책은 “은행 직원이 제지할 기색이 없는 것 같으면 몇 달씩 같은 지점을 집중적으로 이용한다”고 털어놨다. 한 은행에 확인한 결과, 직원 5~6명의 소규모 지점이 지난 두 달 동안 20건이 넘는 송금을 처리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렇게 빠져나간 돈이 주로 중국 현지에서 부동산 투기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입금에서 송금까지 전 과정이 워낙 정교해 돈의 출처나 사용처 파악이 어렵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돈을 모아 조직적으로 보내기 때문에 여러 성격의 돈이 섞여 있을 것”이라며 “중국 현지의 장기밀매 대금도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여유자금이 재투자가 안 되고 해외로 빠져나가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우리 경제의 체질이 조금씩 허약해질 수 있다”면서도 “실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동남아 쪽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송금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덧붙였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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