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오·용성 형제 집유 선고
‘재벌범죄 엄단’ 의지 무색
‘재벌범죄 엄단’ 의지 무색
회삿돈으로 이자대납 ‘횡령’이 재무구조 개선 기여?
회사돈 326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오(69)·용성(66) 전 두산그룹 회장에게 항소심에서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인재)는 21일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이 선고된 두 피고인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의 형량은 적정하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이 선고된 박용만(51) 전 부회장에 대해서도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과 피고인은 양형부당을 항소 이유의 하나로 들고 있는데, 양형부당은 원심의 선고형이 법관 재량의 합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며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거나 무거워서 양형에 관한 합리적 재량을 벗어났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판결은 일반 경제 사건은 물론 다른 재벌 비리 사건과 비교해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 형제와 비슷한 방법으로 회사돈을 빼돌린 대상그룹의 임창욱 회장은 220억원을 횡령하고도 1심에서 징역4년, 항소심에서 징역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더욱이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로 “회사돈으로 총수 일가의 채무에 대한 이자를 대납한 것이 결과적으로 회사 재무구조를 개선했다”는 다소 엉뚱한 이유를 댔다. 재판부는 “이자대납액 139억원 횡령은, 당시 두산건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유상증자를 할 수 없었고 대주주들의 참여로 성공했다”며 “대주주들에 의해 투입된 돈은 결과적으로 회사의 재무구조를 개선시키는 데 기여한 점 등 비난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업 비자금 사건에서 금액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사용처와 조성 경위, 기업이 처한 현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려는 대법원의 기류와도 동떨어진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1심 재판부가 집유를 선고한 데 대해 “부적절한 판결”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전주지법 등 다른 법원이 마련한 양형기준에 비교해서도 솜방망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한편 양형부당을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으므로 두산그룹 쪽에서 상고하지 않는 한 이번 형량은 확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박준효)는 “재판부가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지금은 딱히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