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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제가 감춘 유해 95년간 이국땅 찬서리

등록 2005-02-28 19:12


뤼순은 랴오둥 반도 끝에서 서해를 향해 비수처럼 뻗은 천혜의 군항이다. 반도 끝의 항구에 서면 안으로는 발해만, 밖으로는 서해 전체가 눈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뤼순은 지난 150여년 동안 동아시아를 뒤흔든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3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주인이 청, 러시아, 일본, 중국으로 4번이나 바뀌었다.

흔히 ‘뤼순 감옥’이라 불리는 ‘뤼순 형무소’의 운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1898년 청-일 전쟁이 끝난 뒤 다롄과 뤼순을 조차한 러시아는 1902년부터 짓다 만 감옥을 남겨두고 뤼순을 떠났다. 일본은 애초 85칸이던 감옥을 257칸으로 증축해 ‘관동도감부 감옥서’라 이름 붙였다. 감옥의 벽돌은 회색과 붉은색 두가지인데, 회색 부분은 러시아가 만들었고, 붉은색은 나중에 일본이 증축했다. 감옥은 이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지정·관리하는 국가 문화재다. 외국인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

정문을 통해 감옥으로 들어서면 건물 안으로 연결되는 차가운 시멘트 돌계단이 관람객을 맞는다. 그 계단 앞에 뤼순 감옥에 압송돼 온 안 의사가 30분 정도 무릎이 꿇린 채 묶여 있었다고 한다. 하얼빈에서 거사가 있은 지 8일이 지난 1909년 11월3일이었다.

일제는 압송된 안중근을 위해 감방을 새로 만들고 그 옆에 간수의 야간당직실을 설치했다. 안 의사가 갇혔던 감옥 안을 들여다보니 창문 앞에 놓인 단아한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 위에 종이와 붓통이 올려져 있고, 왼쪽 벽에는 안 의사의 유묵 모조품 2점이 걸려 있다. 이 책상에 앉아 안중근은 <안응칠 역사>를 썼고, <동양평화론>은 일본의 방해로 완성하지 못했다.

%%990002%%안 의사의 숨이 끊어진 곳은 정문에서 왼쪽으로 40m 접어든 집 안이다. 건물 앞에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사형실’이라는 팻말이 선명했다. 창문을 비집고 보니 그 방안에 세워진 안 의사의 금빛 부조상이 어렴풋이 보인다.

발길을 돌려 감옥 내부로 들어서니 방사형으로 놓인 감방을 가운데 선 간수가 감시할 수 있게 만들어진 감시대가 눈길을 끈다. 감방이 일렬로 늘어선 복도를 걷다 보면 중국 혁명가들 사진 가운데 단재 신채호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신채호의 죄수번호는 417번이었고 1936년 2월11일 이곳에서 숨졌다.

건물 곳곳에서 갖가지 고문도구와 수감자를 묶어 놓고 매질하던 칠성판 등이 발견됐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0.8평짜리 독방도 4칸이나 된다. 수감자의 죄질에 따라 옷을 청·홍으로 나누고, 여섯 등급으로 밥그릇의 크기를 조절해 배급량을 구별한 치밀함이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사형실에는 죄수들의 목을 걸던 교수대의 모습이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교수대를 마주보고 왼쪽으로 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사형수를 묻던 수인묘지와 연결되는 철문이 기다리고 있다. 뤼순은 말 그대로 동양의 ‘아우슈비츠’다. 마지막 형무소장이던 다코 니로가 러시아군에 체포될 때 수감자는 4천명 정도였고, 그의 임기(1944년 5월~1945년 8월) 동안 100여명이 처형당했다. 뤼순감옥/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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