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의 배경이 된 한강시민공원 원효대교와 마포대교 사이에는 약 22개의 간이매점이 영업중이다.
[현장] 한강 간이매점 87곳의 ‘강두네’가 가장 두려워 하는 건?
최근 흥행 기록을 잇따라 갈아치우고 있는 영화 <괴물>(감독 봉준호)은 한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한강에서, 한강으로 인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봉준호 감독은 한강시민공원에서 간이매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소시민 ‘강두네’를 주인공으로 이들이 ‘괴물’을 만나는 상황을 설정해, 이야기를 펼쳐갔다. 변희봉· 송강호(주인공 강두 역)·배두나 등 영화 속 ‘강두네’가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만난 ‘괴물’과 싸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루에 수십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강두네’는 ‘정체불명의 괴물’과 만나 가족의 생사를 걸고 싸운다. 그렇다면 ‘강두네’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한강시민공원에서 간이 매점으로 생계를 잇는 이름없는 숱한 ‘강두네’를 찾아갔다. <편집자>
‘강두네’ 가게, 올해처럼 잇따라 물에 잠기면…
영화 속 ‘강두네’는 ‘괴물’과 싸우지만, 현실 속 간이매점 주인들도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영화속 괴물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볼거리이자 재미였다면, 현실 속 ‘괴물’은 그렇게 무섭지도 볼 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실 속 ‘강두네’에겐 두 번째의 괴물이 진짜 무서운 괴물이었다.
현재 한강시민공원에는 87개의 간이매점이 영업중이다. 상인들은 컨테이너로 된 3.1평의 작은 공간을 1년에 100여만원의 임대료와 30여만원의 하천점용료를 시에 지급하며 영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 규격봉투 사용료·전기사용료·부가세·주차료 등 꼬박꼬박 나가는 돈이 1년 평균 565만원이다. 장사는 여름휴가지처럼 ‘한철 장사’, 6·7·8월에 집중되어 있다. 이때는 하루에 20여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한강간이매점연합회’에서 작성한 〈2005한강간이매점운영계획서〉를 보면 6·7·8월의 매출액이 1년 전체 매출액의 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성수기’라고 해서 항상 대목인 것은 아니다. 올해처럼 물난리라도 나면 성수기는커녕 돈은 돈대로 들이고 장사는 몇 주 공친다. 한강시민공원이 침수되는 게 이들 ‘강두네’가 자주 만나는 ‘괴물’이다. 평균 잡아 3~4년에 한번씩은 한강시민공원 전지역이 침수되고, 올 여름처럼 잇따라 침수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시민공원이 물에 잠기면 피해가 막심하다. 생계인 장사를 접는 것은 물론이고, 침수를 막기 위해 급하게 지게차를 동원해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매점을 높은 지대로 옮겨야 하고, 물이 빠진 뒤에는 다시 옮겨와 자리를 잡고, 주변을 청소해야 한다. 뻘로 뒤덮인 한강을 찾는 사람들도 확연히 줄어든다.
물에 잠기면 뻘 치우는 데만 며칠, 올해 2주 동안 장사 못해
재빨리 대피 못한 잠실지구 5개 매점은 물에 떠내려 가
컨테이너를 옮기기 위한 ‘지게차’ 사용료는 가게마다 ‘갹출’한다. 지게차 사용료는 시간당 낮에는 5만원, 저녁에는 9만원이다. 6대 정도가 하루를 꼬박 작업하는데, 올해는 한 집당 2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올해 침수 때는 잠실지구의 5개 매점이 물에 휩쓸려 갔다. 그나마 쓸려 내려가지 않았던 매점들도 2주 동안 문을 닫았다. ‘뻘’을 닦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성수기 때는 하루에 20만~25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데 수백만원의 매출 손실을 입은 것이다. 성수기 때 닥치는 물난리는 그야말로 현실 속의 강두가 만나는 ‘괴물’인 셈이다.
매출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장소는 A등급부터 D등급까지 있는데 A등급이 아니면 동절기에는 거의 문을 닫는다. 장소 결정은 2년에 한번씩 추첨을 한다. 계획서에 따르면 A등급과 D등급의 매출 차이는 약 4배 정도다. 89년 간이매점이 생긴 이후 한번도 A등급에서 영업을 못해본 사람도 수두룩 하다. 이들은 대부분 전셋집도 없는 형편이다. 상인들 대부분은 “죽지 못해 운영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 이 매점도 내년이면 전부 비워주어야 할 운명이다. 서울시의회는 2005년 12월 13일 ‘서울특별시한강시민공원이용시설의설치및운영에관한조례안’을 가결하고 간이매점의 운영시한을 2007년 12월31일까지로 못박았다. 내년 말까지 하면 현재 상인들은 모두 ‘가게’를 잃게 된다. 재계약 요구는 ‘형평성’의 이유로 ‘거절’당했다. ‘강두네’가 마주친 진짜 ‘괴물’이다.
쫓겨나는 마당에 주류판매 금지까지
“시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 해줬더니, 결국엔…”
영화 속에는 강두(송강호)가 손님에게 캔맥주를 배달하고 오징어를 구워 파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 장면은 말그대로 ‘영화 속 장면’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시가 올해부터 간이매점의 주류판매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상인들에게는 주류와 안주는 매출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맥주나 소주를 팔면 그에 따른 안주를 팔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모든 매출이 주류와 연관되어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것 만큼 음료수는 잘 팔리지 않는다. 한 상인은 “음료수는 냉장고에서 캔에 녹이 스는 게 부지기수”라며 “주류 판매가 거의 모든 매출액이다”고 말했다. 한강상인연합회 조성복 회장은 “전체 매출액의 60% 이상을 주류가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올해 4월부터 ‘간이매점의 주류판매 금지’를 계약서상 명문화했다. 강두네가 만난 또하나의 무서운 ‘괴물’이다.
조성복 상인연합회장은 “사형을 앞둔 사형수도 쌀밥을 먹이는 게 우리 정서인데, 상인들 쫓아내면서 주류까지 못팔게 하는 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속을 더 타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한강에 유유히 떠 있는 유람선이다. 이곳에선 주류판매가 허용된다. 애초 ‘주류판매금지’ 검토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6천원짜리 병맥주부터 30만원짜리 와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형평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18년째 매점을 운영중인 ㅂ(52·여)는 코앞 유람선 선착장 입구에 붙여놓은 현수막을 볼 때마다 ‘홧병’이 도진다. 현수막의 내용은 이렇다. “한강의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야외에서 한잔의 호프를 즐기세요”. ㅂ씨는 “시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 해줬더니 결국은 쫓겨난다”며 “18년 동안 장사하면서 악밖에 남은 게 없다”고 말했다.
추워도, 비 와도, 더워도 파리 날리는 신세
기자가 찾은 2일 오후 3시30분 “이게 오늘 마수걸이네”
ㅂ씨와 인터뷰 도중 ㅂ씨의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ㅂ씨는 아들에게 “덥지, 전기세 아까워서”라고 말했다. 덥지만 전기요금이 아까워서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2일같이 땡볕이 내리 쬐는 날도 손님은 없기 마련이다. 오후 3시30분 즈음 기자가 ㅂ씨에게서 산 녹차가 오늘 마수걸이라고 했다. 여름에는 집에도 못들어가고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열대야를 피해 나오는 저녁손님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손님이 없는 낮에는 잠깐씩 눈을 붙인다고 한다.
ㅂ씨와 인터뷰 도중, 한 시민이 다가와 “맥주 있어요?”라고 물어왔다. ㅂ씨는 돗자리로 가려진 냉장고의 한켠에서 맥주를 꺼내 손님에게 건냈다. 맥주를 산 시민에게 “맥주 판매가 금지된 줄 아느냐”고 물었다. 직장인 이상국(28)씨는 “전혀 몰랐다”며 “한강에서 맥주 안마시면 어디 가서 마시냐”고 반문했다. 그는 “질서유지 차원에서 주류판매를 금지시켰다는 점에선 공감하지만 야구장처럼 적당히 한 잔씩 하면 무슨 문제냐”고 덧붙였다. 한연주(25·학생)씨도 “서울시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며 “편의점에서 사와서 마시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직장인 이승범(28)씨도 “한강에서 종종 술을 많이 마시곤 했는데 서울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실효성이 없는 것 같다. 시민들 불편만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쾌적한 한강과 질서유지 위해 술 판매 금지해야”
한강시민공원사업소쪽도 주류판매 금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공원 간이매점운영을 총괄하는 운영과의 김계호 팀장은 “상인들의 반발이 커서 사업소쪽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해다. 김 팀장은 “한강을 공원화하고 질서유지를 하자는 취지에서 주류판매를 금지하자는 의견이 진작부터 있어왔다”며 “사업소 차원에서 먼저 솔선수범하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람선에서 계속해서 주류 판매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선 “적용 법규가 다르다”, “소관 부서가 아니다”는 말로 대신했다.
주류판매를 계속 하고 있는 유람선쪽에서도 “술을 못 팔게 하는 건 말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원효대교 근처의 한 유람선 레스토랑의 영업본부 지배인은 “간이매점은 서울에서 관리하는 것이고 이곳은 개인사업자가 하는 것이라서 서울시 규제와는 상관없다”며 “질서 유지 차원이라면 전국의 모든 술집이 문을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실 수는 있고 근처 매점에서는 팔지 못하게 한다는 정책은 여러 모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계호 팀장도 “사실상 주류판매를 금지할 법적 규정은 없다”고 말할 정도다.
현재 형태의 한강시민공원 간이매점은 1988년 올림픽 이후 도시 정비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서울특별시 노점상 정비계획 에 ’따라 당시 난립했던 한강변 노점상 426곳(포장마차 321, 손수레 33, 좌판 37. 기타 35)을 일제 정비하면서 간이매점 설치 후 추첨을 통하여 175명을 선정해 매점을 운영해 왔다. 2000년에는 간이매점이 너무 많고 시설이 낙후되어 공원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일자 ‘간이매점 시설물 정비및관리개선계획’을 통해 2인 1조의 공동운영을 시작하면서 87곳으로 축소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봉준호 감독과 강두네 가족이 사투를 벌이는 영화 ‘괴물’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한국영화 대박 신기록을 향해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 현실 속 ‘강두네’는 하루하루 진짜 두려운 괴물과 대책없이 마주해 가고 있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한강 고수부지 시설물들은 엉망진창 한강의 수위가 점차 내려가 한강 일대가 제 모습을 드러낸 7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설치됐던 시설물들이 엉망진창으로 변해있다.(서울=연합뉴스)
7월 27일 개봉한 <괴물>(봉준호 감독, 청어람 제작)이 역대 개봉영화 가운데 최단기간에 200만명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다.
한강상인연합회 조성복 회장이 2일 영화 <괴물>의 주무대였던 원효대교 밑에 섰다. 조 회장은 원효대교 밑에서 간이매점을 운영중이다.
조성복 회장이 운영중인 간이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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