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발부됐다. 옷을 벗은지 나흘밖에 되지않아 현직이나 다름없는 선배법관에 대한 영장을 심리하고 발부한 영장담당 판사의 고통이야 헤아리기 어렵지 않지만 갖가지 비리의혹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하겠다. 법의 형평성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고위법관이 개인비리로 인해 구속되는 사상초유의 사건 앞에 사법부 구성원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 한 충격을 받았겠지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시점이다. 5,6건의 민.형사사건에 개입하고 그 대가로 브로커에게서 거액의 현금과 함께 고급가구 등 1억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결코 가볍지 않고, 일반공무원의 경우 구속수사가 당연시 됐을것으로 보면 법관이라 해서 예외로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엄하고 무거운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것이 합당하다. 법관들에게는 그 직무의 특성상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돼 왔기 때문이며 재판에 대한 신뢰와 사법부의 권위 또한 고도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유지된다는 점이 그 이유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법관으로서 그 죄가 중하다'는 영장발부 사유에서도 적시된 대목이다.
이번 일로 사법부에 대한 권위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또 한번 실추된 셈이다. 땅에 떨어진 권위와 신뢰를 되찾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상처는 깊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사법부 전체가 곱씹어 보아야 할 상황이다. 법조브로커 사건에 판사들이 연루된 의혹이 불거질때 마다 유야무야 넘겨버린 과거의 안이한 처리방식이 사태를 더욱 키우고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은 감내해야 할 일이다. 무리한 수사로 간주, 검찰을 되씹거나 섭섭함을 표시할 명분이 없다. 법원과 검찰의 갈등으로 보는 법원내부의 시각 또한 가당찮은 것이다. 환골탈태하고 법관들 스스로 마음가짐과 함께 몸가짐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법관 개개인의 양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청렴과 도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양심에 대한 외부인의 감시를 부끄러워 하거나 자존심을 내세워 거부할 때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법조분야를 내적,외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부패통제시스템의 결여가 법조부패를 구조화 하고 있다는 외부의 지적도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비리연루 법조인에 대한 변호사등록 제한조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호사법이 개정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판사나 검사들이 비리와 관련된 조사가 시작되면 옷을 벗고 징계를 피하는 행위도 막아야 한다. 이와함께 판.검사들에 대한 징계처분 결과를 공개하는 일도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비리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야 말로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고 실추된 사법부의 권위를 되찾는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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