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회원 10여명이 관광안내소 직원 김아무개(가운데) 씨를 둘러싼 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8·15 집회 마친 보수단체, 관광안내소 직원 폭행 “너무 억울하다”
광복절을 맞아 집회를 연 보수단체 회원들이 근처 관광안내소 유리창에 자신들의 유인물을 붙이려다 이를 제지하는 직원에게 몰매를 가하고 달아나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15일 오후 5시25분께 서울 청계천 삼일교 근처 외국인 관광안내소에서 영어통역원으로 근무하는 김아무개(28)씨는 보수단체연합 ‘라이트코리아’ 회원 1천여명이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는 과정에서 버린 수많은 유인물을 치우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이 관광안내소 유리창에 ‘노무현 퇴진’이라고 쓰인 유인물을 붙이려 하자 김씨는 “선생님, 거기에 붙이시면 안 됩니다”라며 말렸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불거졌다.
40~50대로 보이는 집회 참가자 한 사람이 “너 빨갱이지?”라고 소리쳤다. 이에 김씨가 “저, 빨갱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10여명이 “우리도 세금 내는데 왜 못 붙이냐?”, “너, 어른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도 돼?”라고 윽박지르며 순식간에 달려들어 김씨를 옴짝달싹 못하게 위협했다. 당황한 김씨가 “그러면 붙이세요”라고 말하자 흥분한 집회참가자들이 “그러면 네가 붙여, 이 빨갱이 새끼야”라며 김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속절없이 온몸을 두들겨 맞아 머리와 목에 타박상을 입었다. 이들은 김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하자 김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집어던지기도 했다.
몇 분이 지나 겨우 안내소 안으로 몸을 피한 김씨는 그제야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가해자로 보이는 한 노인이 안내소 문을 열어젖히며 “네가 맞을 짓을 했어. 이건 다 국가 대의를 위해서야. 이게 왜 쓰레기야”라고 한동안 시비를 붙기도 했다.
봉변을 당한 김씨는 “관광안내소 직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려 했을 뿐”이라며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쳐본 적이 없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이미 김씨를 폭행한 사람들은 모두 달아난 뒤였다. 대신 사건이 벌어진 직후 한 보수단체 대표라고 신원을 밝힌 조아무개씨와 김씨는 서울 종로경찰서 종로지구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이미 피의자들이 모두 도망친 뒤라 일단 김씨와 조씨로부터 사건 경위를 파악한 뒤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보수단체 대표 조아무개씨는 현장을 취재중이던 기자에게 “노인들이 그동안 힘들게 살아와서 그런 것이니 참고 이해해 달라”며 “내가 모두 책임지고 김씨에게 치료비를 줄 테니 기사는 쓰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글·사진 전진식 기자, 장유영(서울대 지리교육 4) 인턴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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