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8군이 주관하는 군 지식 경연대회 중 하나인 ‘백선엽 보드’가 백선엽 장군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는 내용의 전기문을 암송하도록 해 친일 행적을 미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백선엽(86)씨는 한국 최초의 육군 대장을 지낸 대표적인 군 원로이지만 지난해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포함된 인물이기도 하다.
‘백선엽 보드’는 지난 2003년 4월 대구의 미군기지 캠프 헨리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미 육군에 배속된 한국군(카투사)을 대상으로 매 분기마다 실시돼 왔다. 이 대회에 참가한 카투사는 미군 심사관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고 난 뒤 A4 한 쪽 분량의 영어로 씌어진 ‘백선엽 전기문’을 큰 소리로 읊어야 한다. ‘백선엽 전기’ 암송 외에도 군 복무 신조, 카투사 제도, 한국 전쟁의 역사, 화생방 등과 같은 분야에 대한 퀴즈도 풀게 된다. 약 20여분 동안 진행되는 이 시험에서 합격점을 넘으면 ‘백선엽 장군 리더십’ 수상자 명단에 든다. 한 해에 약 10여명의 카투사가 이 상을 받고 있으며, 수상자들은 백선엽씨와 용산 기지 호텔에서 만찬을 함께 하는 기회를 갖는다.
문제는 암송해야 하는 백씨의 전기문이 친일 행적은 쏙 뺀 채 그를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문은 ‘만주군 복무가 끝난 뒤 소련군을 피해 평양으로 가서 (일제로부터의)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백씨는 만주봉천군관학교를 나와 1942~45년 3년 동안 간도특설대 교관으로 근무했다. 간도특설대는 38년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창설된 만주군의 특수부대다. 백씨는 45년 일제 패망으로 간도특설대가 해체되고 만주로 진격해 오는 소련에게 무장해제를 당하자 같은해 9월 평양으로 달아난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백씨는 이후 조만식의 비서실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만주군 장교였던 전력 때문에 45년 12월 말 만주군 장교들과 함께 월남했다”며 ”이런 사실을 모두 숨긴 채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면 사기를 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백선엽 보드’에 참가해 상을 받았던 최아무개(25)씨는 “백선엽 보드가 친일 경력이 있는 자를 '영웅 만들기'하고 있는 것 같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군대에서 대회에 나가라고 지명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전기를 외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백 보드에 참가했던 황아무개(26)씨도 “친일경력이 있는 자를 그 정도로 미화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된 상황에서 이런 퀴즈대회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백씨 쪽은 “2003년 주한미군 쪽에서 먼저 한국 최초의 육군 대장이었던 백 장군을 기리는 대회를 열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서 허락했다”며 “전기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는 “백선엽씨는 그 업적이 위대하다고 칭송받으며 군 내부에서 막대한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미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상징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젊은 병사들에게 왜곡된 백선엽 전기를 외우라고 강요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이용주 인턴기자(서울대 정치4)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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