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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눈물의 커피’를 마시는군요

등록 2006-09-01 19:28수정 2006-09-02 00:25

2500만 농민 착취의 산물
생산비 절반값에 팔려나가
누구나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법·제도와 사회구조를 개선해 그런 세상을 맞아야겠지만, 당장 오늘 일상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세상은 늘 미래형일 뿐이라는 공허함이 남는다. 작지만 가치 있는 실천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현재형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함께 매주 한두 차례씩 그런 실천 사례를 찾아본다.


저는 커피콩입니다. 제 이름은 ‘히말라야의 선물’이고 네팔의 해발 2000m 고산지대에 있는 굴미마을이 고향입니다.

우리는 키 1cm에 몸무게 0.15g의 작고 못생긴 존재지만, 그 몸 안엔 지름 1만2756km의 지구가 겪는 눈물과 한숨이 고스란히 스며 있지요. 제 친구들이 자라는 네팔을 비롯해 케냐·인도네시아·브라질 같은 ‘커피벨트’에서 2500만명의 커피 경작 농민들이 다국적 기업에 착취당하며, 땀 흘려도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아프리카 우간다의 키툰투에서 자란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죠. 1kg당 영국돈 40펜스(730여원)에 ‘코요테’로 불리는 중간상인들에게 팔려간답니다. 생산 비용의 60%도 안 되는 값이라니! 1997년 500명이던 이 마을 중학생 수는 4년 만에 54명으로 확 줄었다고 하지요. 아이들도 농장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 저를 심어 기른 하리고탐 아저씨한테 더는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에 1kg당 3천원에 팔리게 됐거든요. 물론 아저씨는 그 돈으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서 제 친구들을 다시 키우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도 있게 됐지요.

한국에 온 저는 서울 명동의 한 커피 아카데미에서 볶아집니다. 지금은 어느새 달콤쌉싸름하고 풋풋한 초콜렛향 커피로 다시 태어나 동그란 에스프레소잔에 담겼습니다. 아, 저기에 저를 음미할 손로사(47)·정연(43)씨 자매가 앉아 있군요. 두 분은 곧 커피 전문점을 내려고 이 곳에서 전문가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는데, 무슨 말을 나누는지 들어볼까요?

“언니, 이 5천원짜리 커피 한 잔이 농사지은 네팔 사람한텐 수고로움의 대가를 제대로 치러주고, 마시는 한국 사람한텐 농약 걱정 없이 커피를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게 참 장해.”


“응! 저 멀리 사는 농부들이 나랑 연결돼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어. 우리, 가게 내면 ‘히말라야의 선물’ 커피도 같이 팔면 어떨까? 이 착한 커피, 손님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저는 보름 전부터 한국에서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팔리고 있어요. 9월부터는 저를 파는 가게와 커피점들이 훨씬 많아질 거라고 하네요. 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말이죠.

커피를 마시는 게 누군가의 눈물이 아닌, 행복을 마시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구의 환경과 미래, 연대를 지키는 행복한 커피향이 이 땅에도 빨리 퍼져나가면 좋겠습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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