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 국회처리 지연
한양대 법학과 1학년 김 아무개(20)씨는 9월 2학기 개강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06학번인 김씨는 지난 학기 동아리 활동까지 포기하고 학점관리에 매달렸다. 2008년에 도입될 예정이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 학부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80여명에 이르는 김씨의 법학과 동기들 대부분이 학점을 잘 주는 이른바 ‘전략과목’을 찾아 시간표를 짰다. 학점에 ‘목숨 거는’ 동기들 탓에 장학금 성적 기준이 지난해 평점 3.8에서 올해 4.0으로 뛰어올랐지만 김씨는 악착같이 장학금까지 타냈다. 그러나 지난 7월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이 1년 연기되면서 김씨의 ‘인생계획’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예정대로 로스쿨이 2009년에 도입되더라도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2012년까지는 사법시험 제도가 유지된다. ‘학점관리 때려치우고 스물여섯살까지 사법시험 한방에 인생을 걸 것이냐’ ‘지금처럼 교양수업 충실히 듣다 군복무 뒤 로스쿨에 진학할 것이냐?’ 2012년에 스물여섯이 되는 재수생 출신 김씨는 복잡한 ‘대차대조표’ 계산에 머리가 아프다.
2012년까진 시험제 유지…대학 1~2년생 진로 골머리
고참 고시생 “무산 됐으면”…고교선 “어느 학과 가야죠?” 국회에서 로스쿨 도입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법대생과 법조인 지망 고교생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특히 1, 2학년 대학생들은 사시 준비와 로스쿨 준비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양대 법대 2학년생 김단비(20)씨는 27일 “일단 2012년까지는 사법시험이 시행되기 때문에 학점관리보다 사시 준비에 힘을 쏟을 것”이라면서도 “고학년들과 달리 1학년 후배들은 사시보다 로스쿨을 염두에 두고 학점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2학년 남자 동기들의 경우 빨리 군복무를 마치고 사시를 준비하겠다는 의견이 많고, 고학년 대부분은 로스쿨 도입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로스쿨 유치를 준비 중인 영남대학교 학장실은 “많은 학부 1, 2학년생들이 진로 상담을 요청한다”며 “로스쿨이 도입되더라도 당분간 사시가 지속되고 법안이 아예 통과 안 될 수도 있어 ‘일단 사시를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27일 털어놨다. ‘불투명한 로스쿨’로 혼란에 빠진 것은 학부생들만이 아니다. 고시생들 사이에서도 ‘이 짓을 몇 해나 더 해야 하는지’ 논란이 뜨겁다. 고시생인 서울법대 97학번 졸업생 이창석(30)씨는 “특히 나이 많은 ‘장수생’들이 사시가 몇 해 더 존속할지에 관심이 많다”며 “고시생들은 대부분 로스쿨이 통과되길 바라지 않으며 대선이 지나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27일 말했다. 고시전문 인터넷사이트 <법률저널>(lec.co.kr) ‘자유게시판’에는 로스쿨이 무산될거라거나 이에 반대하는 글이 많았다. 이 사이트 자유게시판에서 ‘로스쿨’로 제목 검색한 결과, 지난달 1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올라온 관련글 58건 거의 모두 로스쿨 도입이 안 될 거라고 전망하거나 드세게 반대하는 의견들이었다. 로스쿨이 설치되는 대학은 법학과 학부 모집이 중지되기 때문에 ‘09학번’이 될 고교 1학년생들도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에 맞춰 미리 대학과 학과 선택을 고민하지 않으면 고 3때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대학별로 수능점수 가중치나 내신성적 반영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법조인을 꿈꾸는 고교생들은 진학과 관련해 미리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통상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한양대 법대에 진학하려고 했던 학생은 2년 뒤 한양대 경제(경영)학과에 진학할 것인지 아니면 타대학 법학과에 진학할지 판단해야 한다. 고1 자녀를 둔 학부모 이아무개(44)씨는 “아이는 법조인이 되겠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며 “학부에서 법대가 없어지면 다른 적성을 찾아야 하는데 무슨 과를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로스쿨 입학은 학부성적과 법률지식이 아니고 포괄적인 논리력을 묻는 적성시험으로 판가름 나므로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의 학부를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적성 등 장기적이 목표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계류 중인 ‘로스쿨 법안’ 26조 3항을 보면, 법학전문대학원은 입학자 중 그해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된 대학 외의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입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입학자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법조인의 60% 이상을 배출하는 서울·연세·고려대 가운데 몇 곳에 로스쿨이 유치될 것이냐도 관심사다. 이는 법조인의 80%를 서울소재 대학 8곳이 차지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모색한다는 법안의 취지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진로담당부는 “1, 2학년들은 로스쿨 문제를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서울·연세·고려대 가운데 로스쿨 유치에서 탈락해 법대가 유지되는 곳이 생긴다면 3학년이 됐을 때 학교·학과 선택에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유치에 수억∼수십억원을 투자한 대학들은 도입 연기보다 법안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 때문에 고민이다. 로스쿨 유치를 위해 신축한 건물과 새로 영입한 교수진들이 결과적으로 ‘과잉투자’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지금까지 50억원 가까이 투자한 영남대 법대 학장실은 “1년 연기돼서 힘든 게 아니라 법안 통과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 가장 큰 문제”라며 “로스쿨이 무산돼도 인력과 건물은 활용하면 그만이지만 안 해도 될 투자를 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고나무 이수범 최현준 기자 dokko@hani.co.kr
고참 고시생 “무산 됐으면”…고교선 “어느 학과 가야죠?” 국회에서 로스쿨 도입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법대생과 법조인 지망 고교생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특히 1, 2학년 대학생들은 사시 준비와 로스쿨 준비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양대 법대 2학년생 김단비(20)씨는 27일 “일단 2012년까지는 사법시험이 시행되기 때문에 학점관리보다 사시 준비에 힘을 쏟을 것”이라면서도 “고학년들과 달리 1학년 후배들은 사시보다 로스쿨을 염두에 두고 학점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2학년 남자 동기들의 경우 빨리 군복무를 마치고 사시를 준비하겠다는 의견이 많고, 고학년 대부분은 로스쿨 도입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로스쿨 유치를 준비 중인 영남대학교 학장실은 “많은 학부 1, 2학년생들이 진로 상담을 요청한다”며 “로스쿨이 도입되더라도 당분간 사시가 지속되고 법안이 아예 통과 안 될 수도 있어 ‘일단 사시를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27일 털어놨다. ‘불투명한 로스쿨’로 혼란에 빠진 것은 학부생들만이 아니다. 고시생들 사이에서도 ‘이 짓을 몇 해나 더 해야 하는지’ 논란이 뜨겁다. 고시생인 서울법대 97학번 졸업생 이창석(30)씨는 “특히 나이 많은 ‘장수생’들이 사시가 몇 해 더 존속할지에 관심이 많다”며 “고시생들은 대부분 로스쿨이 통과되길 바라지 않으며 대선이 지나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27일 말했다. 고시전문 인터넷사이트 <법률저널>(lec.co.kr) ‘자유게시판’에는 로스쿨이 무산될거라거나 이에 반대하는 글이 많았다. 이 사이트 자유게시판에서 ‘로스쿨’로 제목 검색한 결과, 지난달 1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올라온 관련글 58건 거의 모두 로스쿨 도입이 안 될 거라고 전망하거나 드세게 반대하는 의견들이었다. 로스쿨이 설치되는 대학은 법학과 학부 모집이 중지되기 때문에 ‘09학번’이 될 고교 1학년생들도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에 맞춰 미리 대학과 학과 선택을 고민하지 않으면 고 3때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대학별로 수능점수 가중치나 내신성적 반영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법조인을 꿈꾸는 고교생들은 진학과 관련해 미리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통상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한양대 법대에 진학하려고 했던 학생은 2년 뒤 한양대 경제(경영)학과에 진학할 것인지 아니면 타대학 법학과에 진학할지 판단해야 한다. 고1 자녀를 둔 학부모 이아무개(44)씨는 “아이는 법조인이 되겠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며 “학부에서 법대가 없어지면 다른 적성을 찾아야 하는데 무슨 과를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로스쿨 입학은 학부성적과 법률지식이 아니고 포괄적인 논리력을 묻는 적성시험으로 판가름 나므로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의 학부를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적성 등 장기적이 목표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계류 중인 ‘로스쿨 법안’ 26조 3항을 보면, 법학전문대학원은 입학자 중 그해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된 대학 외의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입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입학자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법조인의 60% 이상을 배출하는 서울·연세·고려대 가운데 몇 곳에 로스쿨이 유치될 것이냐도 관심사다. 이는 법조인의 80%를 서울소재 대학 8곳이 차지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모색한다는 법안의 취지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진로담당부는 “1, 2학년들은 로스쿨 문제를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서울·연세·고려대 가운데 로스쿨 유치에서 탈락해 법대가 유지되는 곳이 생긴다면 3학년이 됐을 때 학교·학과 선택에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유치에 수억∼수십억원을 투자한 대학들은 도입 연기보다 법안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 때문에 고민이다. 로스쿨 유치를 위해 신축한 건물과 새로 영입한 교수진들이 결과적으로 ‘과잉투자’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지금까지 50억원 가까이 투자한 영남대 법대 학장실은 “1년 연기돼서 힘든 게 아니라 법안 통과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 가장 큰 문제”라며 “로스쿨이 무산돼도 인력과 건물은 활용하면 그만이지만 안 해도 될 투자를 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고나무 이수범 최현준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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