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신청을 받아들인 뒤 성별신청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대법원은 “남자가 여자로성전환하기 위해서는 병역의무를 마쳐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성전환 허가기준’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대법원은 성 전환의 허가기준으로 병역 이행 외에 아래의 6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했다. △ 만 20살 이상, 혼인한 사실이나 자녀가 없을 것 △반대의 성에 귀속감을 느껴왔을 것 △상당기간 정신과적·호르몬요법 치료 받은 뒤 성전환수술을 통해 신체외관이 반대 성으로 바뀌었을 것 △생식능력을 상실했고 종전의 성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극히 희박할 것 △범죄·탈법이용 의도 없을 것 △신분에 중대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 등이다. 대법원은 이를 위해 병적조회, 전과조회, 신용정보조회 등을 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발표한 지침은 성전환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성별정정신청을 어렵게 만들어 신청을 최대한 막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인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또한 지난 5일 인천지방법원에서는 27살의 남자에서 여자로의 성전환자(MTF·Male to Female)에 대해 성기 외형 수술이 없어도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이 나와 일선 법원의 판결과 대법원 지침이 충돌하고 있다. 한편 대법원은 올초부터 지난 6일까지 성전환자들이 성별 정정 신청건수가 47건으로 지난해 28건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동성애인권단체 “성전환 하지 말라는 소리다”
동성애인권단체들은 대법원의 지침을 비난했다. 대법원의 지침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은 “대법원 지침은 대법원의 보수적인 입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며, 대부분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만20세 이상의 성인으로 신청자를 제한한 것은 학창시절부터 차별을 받아오는 성전환자들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며 “부모 동의를 얻으면 누구든 성별정정 신청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성기가 모두 상대 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지난 5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외부성기의 수술없이도 성별정정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며 “특히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FTM·Female to male)의 경우 대부분 성기수술에 대한 만족도가 극히 낮은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만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병적조회, 신용정보조회, 출입국사실조회 등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병역기피나 범죄 은폐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준을 내세웠지만 마치 성전환은 도덕적 인간만이 해야 하는 것이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성전환자들의 처지를 무시한 것이다”고 항변했다.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장병권 활동가는 “그동안 대부분 판사 재량에 의해 결정된 성별정정에 대해 어떠한 기준을 마련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지침 내용을 보니 사무처리하기 좋게 만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공청회를 통해 대법원이 동성애자들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척했으나 결국은 요식행위였다”며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에 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 법원의 판결과 엇갈리는 것에 대해서도 “대법원 지침 때문에 성전환에 대한 개혁적인 판결들이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성전환 허가 반대쪽은 “성전환은 또 다른 인권침해 낳아”
성전환 자체를 반대해왔던 기독교관련 운동가들은 이번 대법원 지침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 8월 21일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공청회’에서 반대 쪽 토론자로 참석했던 박영률 국가발전기독연구원 원장은 “성전환이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에 대해선 동의한다”며 “하지만 소수때문에 절대 다수가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자식을 낳은 아버지가 나중에 여자로 성전환을 했을 때 그 자식이 겪는 고통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라고 되물은 뒤 “성전환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대법원의 지침이 더욱 엄격해져서 성전환을 최대한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최근 발견한 사례 가운데에는 군복무를 회피하기 위해 고의로 여성 호르몬을 맞아 가슴을 키운 뒤, 군면제를 받고 다시 절제 수술을 한 경우도 있었다”며 “대법원의 지침도 이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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