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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고] 금 검사는 헌법을 읽어주었을 뿐이다 / 김형태 변호사

등록 2006-09-19 08:19수정 2006-09-21 15:30

김형태 변호사
김형태 변호사
[금 검사 ‘기고중단’ 파문] 헌법 12조 “모든 국민은…”
형소법 교과서 “검사는…대변자”

“피의자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라.”

금태섭 검사는 너무도 당연한 충고를 했다. 사형과 무죄의 양극을 오가다가 8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남편은 자신의 결백만 믿고 가끔 부부싸움 한 일이며 처와 시가 사이의 갈등도 술술 다 풀어놓았다. 본인이 털어놓지 않았으면 수사기관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을 이 정황들이 나중에 모두 살인의 동기로 둔갑하여 본인을 옭아맸다. 임수경, 문규현 신부며 송두율 교수가 북에서 한 말과 행동도 본인이 진술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에서 전혀 알 수 없었다. 본인들이 털어놓은 진술은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 사실이 되었다. 금 검사 말마따나 법률 전문가도 약자인 피의자 처지가 되면 법률 문외한들과 별로 다름없는 행동을 한다. 엊그제까지 형사재판장이었던 어떤 단독 판사는 자신이 기소되자 안절부절못하며 변호사 사무실을 수도 없이 찾아왔다. 얼마 전 크게 문제가 되었던 법조비리 사건도 그렇다. 수십년 재판을 해온 고등법원 부장판사조차도 수사의 대상이 되자 스스로 함정을 팠다. 본인으로서는 결백을 밝히려는 취지였겠지만 사적인 인연을 통해 상황을 털어놓기도 하고 관련자들로부터 확인서도 미리 받았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오히려 증거 인멸 시도로 몰려 구속의 사유가 되고 말았다. 본인으로서는 매우 억울할 일이다. 내가 변호인이었다면 오해 소지가 있으니 자제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말을 하지 말라는 금 검사의 충고는 사실 헌법 제12조를 그대로 읽어 준 것에 불과하다. 헌법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이는 아무 죄도 짓지 않은 무고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법조문이 아니다. 실제로 못된 범죄를 저지른 ‘공공의 적’들이라 할지라도 자기 죄를 수사기관에 스스로 자백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다.

범인을 붙잡아 사회를 보호해야 할 검사의 처지에서 피의자들이 입을 다물면 참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 사회 최고의 가치규범인 헌법이 범인도 입 다물어도 좋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을. 검사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방법으로는 피의자 신문 이외에도 참고인 조사, 압수, 수색, 검증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수사기관이 주로 피의자의 입에 의존하려는 관행은 자기부죄(自己負罪) 금지 원칙이라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고, 다양한 수사기법을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법 조문을 읽어 준 데 불과한 것을 가지고 검찰 공보관리 지침에 어긋난다거나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 양형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증거 인멸 하는 법, 체포를 피하는 법 등 법망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려 한 것이 아니고 “단지 현행법상 피의자 또는 사건 관계인들에게 인정되는 권리의 행사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라고 권유”하는 것뿐이라고 금 검사 스스로 밝히고 있다.

검사는 경찰처럼 단순히 행정부에 복속되는 수사기관이 아니다. 검사에게 법관과 동일한 자격을 요구하는 것은 검사가 피의자의 소송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단독제 준사법관청이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교과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검사는 국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며, 따라서 정의에 대한 국가의 의지를 상징하는 법치국가 원리의 대변인(Vertreter des rechtsstaatlichen Prinzips)이다.” 이처럼 검사가 피의자의 소송법적 권리 보호 의무를 진다는 명제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부인하는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다.

금 검사의 ‘수사 받는 법’ 연재는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 옹호라는 지극히 당연한 검사의 ‘객관 의무’를 이행한 것일 뿐 수사의 노하우를 공개한 자해행위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엊그제까지 검사였던 사람이 옷 벗고 변호사가 되자 후배 수사검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수사 노하우를 이용하여 증거 인멸을 사주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일이다. 단순한 수사의 주체에서 더 나아가 피의자의 소송법적 권리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무부 스스로 최근 ‘인권국’을 신설한 바 있다.

금 검사의 이번 연재야말로 바로 법무부 인권국이 앞으로 할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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