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주 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는 박숙자 할머니와 초점 잃은 눈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윤인순 할머니. 지난 11일 만난 이들은 모두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 외로움을 못 견뎌 사할린으로 되돌아왔다.
‘나홀로 귀국’ 이산가족 외로움 못 견겨
“직계비속 확대 법안 빨리 통과됐으면”
“직계비속 확대 법안 빨리 통과됐으면”
법에 우는 영주귀국 동포들
조국은 생이별을 강요했다. 사할린 동포들에게 ‘영주귀국’이랍시고 문을 열어줬지만, 많은 동포 노인들이 가족을 두고 홀로 귀국해야 했다. 1945년 8월15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만 귀국 대상으로 정한 까닭이다.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사는 윤인순(79) 할머니는 그 생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서리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지난 11일 만난 윤 할머니는 기운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한국, 나무랄 데 없이 좋아. 하지만 멀리 두고 온 자식들이 눈앞에 계속 어른거리니 견딜 수가 있어야지.” 큰딸 고행자(59)씨는 “어머니가 풀죽은 모습으로 종일 의자에만 앉아 지내는 게 여간 안타깝지 않다”며 “고령으로 산책도 못 나가는 어머니는 늘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말만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에서 나고 자란 윤 할머니는 1940년대 초반에 남편과 함께 일본에 건너갔다가 해방 직전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 이주됐다. 광복을 맞은 뒤 남편 고성상(94년 별세)씨는 건축일을 했고, 할머니는 농업조합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70살이 넘어서야 윤 할머니는 50여년의 타향살이를 접고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5남매 자식들과 손자들은 모두 사할린에 남아야 했다. 2004년 5월 윤 할머니는 4년여 만에 다시 조국을 떠나기로 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는 박숙자(80) 할머니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영주귀국 뒤 5년 동안 한국에서 혼자 지낸 할머니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지난해 7월 사할린으로 되돌아왔다. 지난여름 심장병으로 쓰러진 뒤에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의식도 갈수록 어두워져 간다. 매일 병원에 찾아와 곁을 지키는 딸 박행자(62)씨는 “어머니가 평생 타국에서 고생만 하다 결국 타국에서 눈을 감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울었다.
2000년부터 경기 안산의 ‘고향마을’과 춘천 ‘사랑의 집’ 등으로 영주귀국한 사할린 한인 1세는 모두 1662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자식들이 그리워 사할린으로 ‘역귀국’한 뒤 한국에 돌아오기를 아예 포기한 한인 1세는 ‘공식적으로’ 6명이다. 하지만 이곳 사할린 동포들은 귀국포기서를 쓰지 않고 와 있는 이들까지 더하면 그 수가 30여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사할린주 유자녀 영주귀국 추진회’의 김외철 회장은 “대부분 70~80살인 노인들이 혼자 한국에 가서 어떻게 살 수 있느냐”며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차라리 한국에 안 가는 것만 못하다”고 답답해했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 열린우리당 의원으로서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및 정착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냈고, 이 법안은 지난 7일 아홉달 만에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됐다. 영주귀국 대상을 ‘직계비속 한 가족’까지 확대한 내용이다. 사할린과 안산시 고향마을 등지의 동포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할린/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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