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 주민 현길영(80)씨가 지난 28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수해로 폐허가 된 집 주변을 쳐다보고 있다. 남편과 손녀 2명과 함께 지내고 있는 현씨는 “집이 없어져 컨테이너에서 추석을 쇠게 됐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인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논 다 잠겨 쌀 한톨 못건졌지
컨테이너에 앉을 자리나 있나
다가올 겨울이 더 걱정이래요
컨테이너에 앉을 자리나 있나
다가올 겨울이 더 걱정이래요
최악 물난리 겪은 인제 한계리 가보니
물이 지난 모든 자리가 폐허다. 마을 아닌 마을에 한가위도 쉬이 오려 하질 않는다.
“차례 올릴 상도 없드래요, 당장 장 보려면 못 잡아도 20만~30만원은 필요한데 이 돈마저 빌려야 할 판인데, 뭘.” 이복순(70·한계3리)씨는 자식들과 9년 전 사별한 남편의 차례상에 고기라도 한 점 올릴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9월28일 곳곳의 무르익은 황금들녘을 가로질러 승용차로 고작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이지만 여느 곳과 달리 한가위를 앞둔 정취를 맛보기는 어렵다. 7월 물난리로 최악의 수해지역 가운데 한 곳이 된 강원도 인제군 북면의 한계리였다.
“추석요? 어떻게 이 좁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차례를 올리나. 다들 내려온다는 자식도 못 오게들 하는 판국인데요.” 가장 피해가 컸던 한계3리의 김일복(65·여)씨는 집, 가게, 창고 하나씩을 잃었다. 이들은 7월15일부터 컨테이너 임시가옥에서 살고 있다. 한계리에서 집이 전파된 이들만 99명이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는 미안할 뿐이다. 특히 피해가 컸던 한계2·3리의 마을 주민만 5명이 숨졌거나 실종됐다.
한계3리를 떠난 적이 드문 이희옥(77)씨는 결국 물 따라 간 아내를 뒤로하고 아들네 집으로 가 추석을 쇠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위령한들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을 물살에 놓친 기억을 털 수 있을까?
거대한 물더미가 삼켰다가 뱉은 이 마을조차 입때껏 ‘그날’의 상처를 털지 못하고 있다. 치우지 않은 집채만한 쓰레기더미가 집과 집 사이 골목을 막다시피 했다. 메마른 한계천엔 당시 휩쓸려 내려온 나무, 쓰레기더미 등이 곳곳에 언덕을 이뤘다.
증조부모 제사까지 올리는 장손 이희찬(50·한계2리)씨는 “수해 입은 집 꼴을 보기도 싫어서 그날 이후 큰 피해가 났던 곳으로는 거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가위 때마다 열다섯 안팎의 형제, 자식 가족들이 몰려와 넓은 안마당을 가득 채우며 옥작복작댔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다. “4~5명만 와도 컨테이너 박스가 다 차는데 안 되죠.” 그는 “여기서만 500년을 대대로 이어 살아왔는데, 이런 적은 정말 처음”이라며 “조상들이 이해하겠죠”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한계리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도 아니다. 한계2리의 이현재(70)씨는 논이 침수돼 쌀 한 톨 거두지 못했다. 농부가 밥 짓기 위해 쌀을 사야 할 판이다. 아들 정규씨는 아예 날품 막노동판으로 나섰다. 이희찬씨도 2500평 논에서 쌀 5가마를 거둔 게 전부다. 하지만 쌀도, 추석도 중요한 게 아니다. 당장 이들은 새 삶을 일굴 집이 필요하다. 수재민 최고 지원금이 14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집터 또는 건축 자재밖에 살 수 없는 돈이다. “정부가 하늘보다 더 원망스럽다”는 그는 “우리를 위해 거둔 그 많은 수재의연금은 다 어디로 갔냐”며 분통을 삭이지 못했다. 이씨는 두 달 사이 8㎏이 빠졌다. 여기저기 물에 잠겼던 논 위의 키 작은 벼들도 바짝 마르기만 한다. 그런데도 2일 인근의 원통리에선 추석 앞둔 대목장이 여지없이 들어선다. 모처럼 한계리 주민들도 나설 참이다. 음식은 물론 차례상이나 제기부터 사야 한다. 이복순씨가 말했다. “아이구 참, 자식들이 와도 해줄 게 없고 애들한텐 비좁아서 걱정이고, 그렇다고 안 오면 볼 기회도 많지 않은데 그냥 막 서운하고 그러지요.” 그러면서 “이번에 3남4녀 가운데 우리 막내아들네가 오기로 했다”며 웃는다. 김일복씨도 “모처럼 웃음소리 좀 나려나” 한다. 하지만 웃음은 길지 않았다. “추석은 그렇다 치고 사실 겨울이 더 걱정이래요.” 인제는 한가위 지나면 겨울이 찾아온다. 인제/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계리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도 아니다. 한계2리의 이현재(70)씨는 논이 침수돼 쌀 한 톨 거두지 못했다. 농부가 밥 짓기 위해 쌀을 사야 할 판이다. 아들 정규씨는 아예 날품 막노동판으로 나섰다. 이희찬씨도 2500평 논에서 쌀 5가마를 거둔 게 전부다. 하지만 쌀도, 추석도 중요한 게 아니다. 당장 이들은 새 삶을 일굴 집이 필요하다. 수재민 최고 지원금이 14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집터 또는 건축 자재밖에 살 수 없는 돈이다. “정부가 하늘보다 더 원망스럽다”는 그는 “우리를 위해 거둔 그 많은 수재의연금은 다 어디로 갔냐”며 분통을 삭이지 못했다. 이씨는 두 달 사이 8㎏이 빠졌다. 여기저기 물에 잠겼던 논 위의 키 작은 벼들도 바짝 마르기만 한다. 그런데도 2일 인근의 원통리에선 추석 앞둔 대목장이 여지없이 들어선다. 모처럼 한계리 주민들도 나설 참이다. 음식은 물론 차례상이나 제기부터 사야 한다. 이복순씨가 말했다. “아이구 참, 자식들이 와도 해줄 게 없고 애들한텐 비좁아서 걱정이고, 그렇다고 안 오면 볼 기회도 많지 않은데 그냥 막 서운하고 그러지요.” 그러면서 “이번에 3남4녀 가운데 우리 막내아들네가 오기로 했다”며 웃는다. 김일복씨도 “모처럼 웃음소리 좀 나려나” 한다. 하지만 웃음은 길지 않았다. “추석은 그렇다 치고 사실 겨울이 더 걱정이래요.” 인제는 한가위 지나면 겨울이 찾아온다. 인제/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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