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재판장 ‘미묘한 질문’… 항소심 기류 다시 바뀌나
에버랜드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새 재판장은 지난달 21일 공판에서 직접 피고인들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특히 에버랜드 쪽에 불리한 미국 판례에 대한 질문도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다.
조희대(49·사법연수원 13기) 서울고법 형사5부장은 허태학, 박노빈 두 피고인에게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전체 사장단 회의는 언제, 어떻게 열었나”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 기존 주주들이 모두 인수할 것으로 판단했나” 등 공모 혐의와 관련한 질문들을 던졌다. 조 부장판사는 또 검찰이 공모를 입증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피고인들이 공모가 없었다고 입증할 책임이 있지는 않은지 연구해 보라는 ‘미묘한’ 주문도 던졌다. 그는 재판 말미에 “미국의 반독점법(Antitrust)을 보니, 두 항공사가 하룻만에 똑같이 항공료를 인상한 사건에 대해 객관적 증거가 없어도 담합으로 추정해 처벌했다. 이 때 두 항공사에 담합이 아님을 입증할 책임을 물은 판례가 있다. 다른 나라 형법에도 이런 이론이 적용된 바 있는지 검찰과 변호인 모두 연구해 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이 판례를 적용할 땐, 허씨 등이 공모하지 않았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유죄가 된다는 결론이므로 삼성으로선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검찰 주변에선 항소심 ‘기류’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심 때도 ‘업무상 배임이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대법원 판례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과정의 불법성이 입증돼 배척됐다”며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이 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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