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서 검거, 여자친구 명의 휴대폰 추적 붙잡아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민은행 강남피비(PB·프라이빗뱅킹)센터에서 일어난 권총 강도 사건의 범인이 48시간 만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2일 오후 5시께 경기 안양시 관양동의 한 모텔에서 용의자 정아무개(29)씨를 붙잡아 조사중이다. 정씨는 지난 18일께 서울 목동의 한 실탄사격연습장에서 이번 범행에 사용한 권총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효도하기 위해 강도질?=22일 저녁 7시께 강남경찰서로 이송된 정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열흘 전 모친이 사망했는데 수배중이어서 임종도 보지 못한 것이 괴로워 자살하기 위해 권총을 훔쳤다”며 “하지만 자살보다는 은행을 털어 제대로 정착하는 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과 8범인 정씨는 사기·절도 등으로 추가 수배된 상태였다. 그는 전북 장수에서 폐암으로 숨진 어머니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죄책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자들에게 “인간 도리상 잘못한 게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체포 과정과 수사 방향=경찰은 정씨가 권총을 훔칠 당시 사용한 ‘대포폰’(남의 이름으로 된 이동전화)의 구입 과정 등을 조사하면서 드러난 여자 친구 이아무개씨를 통해 정씨의 또다른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 끝에 정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정씨가 투숙하던 안양의 모텔에서 소지품과 채무변제와 경비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돈 9천여만원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정씨는 경찰의 수배 내용처럼 175㎝ 전후의 키에 반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앞으로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와 공범 여부, 애인 이씨의 연루 여부, 범행 계획 과정 등을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 특히 정씨가 이렇다 할 수입 없이 지난 8월부터 서울 송파구의 한 모텔에 투숙해온 것으로 확인돼, 그동안 생활경비를 어떻게 마련했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다.
범행 계획과 준비는 치밀했다=정씨는 “강남피비센터는 강남역 근처를 걷다 우연히 처음 들어간 은행이었다”며 “지점장을 협박하면서 ‘20일 동안 미행했고 경찰에 신고하면 가족을 해치겠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범행에 쓰인 독일제 9㎜ 구경 권총과 실탄 20발을 실탄사격연습장에서 훔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우발적 범행이라는 정씨의 주장과 달리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현장에 범행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은 점과 “범인의 언행 등이 상당히 세련돼 보이더라”는 황아무개(48) 지점장의 진술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애초 이 사건 수사는 난항을 겪는 듯했다. 강도 사건 용의자가 공개 수배된 뒤 이틀이 지나도록 제보가 8건에 그쳤고, 은행에서 지문 등 수사 단서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범행 전 현장 답사 가능성을 예상해 지난 4일치 은행 보관용 폐쇄회로 텔레비전 화면을 모두 조사했지만 정씨는 일절 드러나지 않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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