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맞벌이 부부·독신자들 배려 부족
재활용쓰레기 출근시간대에만 버리라니…
#서울 동작구 ㅅ아파트 입주자 박아무개(30)씨
눈을 떠보니 아침 7시20분. 어제 저녁 회식 때문에 30분이나 늦게 일어났다. 서둘러 남편을 깨우고 화장을 하고 나니 8시. 현관문을 나서는데 1주일 동안 모아둔 페트병과 신문지가 발에 차인다. 지금 버리지 않으면 또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이 아파트에서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시간이 화요일 아침 5~9시 뿐이다. 늘 재활용 쓰레기통을 설치해 두면 아파트가 지저분해져 집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전날 저녁에라도 버릴 수 있게 해주면 좋을텐데 …. 지금 버리려니 지각할 게 뻔하다. 할 수 없지, 다음주면 재활용 쓰레기가 산을 이루겠다.
반상회는 평일 저녁에…벌금만 꼬박꼬박
#서울 양천구 ㅅ아파트 입주자 지아무개(34)씨
토요일, 모처럼 늦잠을 즐기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부녀회장님이다. 지난주 반상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니까 벌금을 내란다. 주섬주섬 3천원을 꺼낸다. 적은 돈이지만 약이 오른다. 평일 저녁 8시에 맞벌이 부부가 어떻게 참석하나. 부장님한테 “오늘은 반상회 때문에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하라고? 이사온 지 3년이지만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도대체 꼬박꼬박 거둬가는 벌금은 어디에 쓰는 건지 따져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막상 부녀회장님의 상냥한 얼굴과 마주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평일 정기소득 매번 놓쳐 바퀴벌레와 ‘동거’ #경기 고양시 ㅈ아파트 입주자 이아무개(37)씨 부서 회의를 마치고 밤 11시께 귀가. 불을 켜니 노총각을 반겨주는 것은 엄지손톱만한 바퀴벌레. 청소를 안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주말마다 깨끗이 청소한다. 밥을 안 해 먹어서 쓰레기도 거의 없다. 아파트 승강기엔 석 달에 한 번씩 하는 정기소독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흘 동안 하니까 가능한 날을 고르라는데, 모두 평일 오전 또는 낮 시간이다. 주말에도 소독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기소독 휴가라도 내야 하나?
반상회→인터넷 카페로, 주말에도 소독…변화바람
맞벌이 부부와 독신 남녀는 계속 늘고 있지만, 공동주택에서 이들을 ‘배려’하는 풍토는 한참 부족하다. 아파트 주민들의 인터넷 카페 게시판들에는 맞벌이 부부의 생활리듬과 맞지 않는 아파트 규칙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의 요구로 규칙이 바뀌는 아파트들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경기 김포시 풍무동 ㅅ아파트와 고양시 화정동 ㅅ아파트 등은 평일에 정기소독을 못 받은 주민들을 위해 주말에 추가로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부산 수영구 ㅍ아파트에선 주민들이 반상회 대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의견을 나눈다. 현재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 8천여개가 운영되고 있어 반상회의 새로운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거문화개선 시민운동본부 차상곤 사무국장은 “아파트 관리사무소들이 맞벌이 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거주자들을 배려하는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맞벌이 부부들의 불만이 쌓여 규칙 지키기를 아예 포기하게 되면 더 큰 주거환경 문제가 일어나고 이웃관계까지 험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평일 정기소득 매번 놓쳐 바퀴벌레와 ‘동거’ #경기 고양시 ㅈ아파트 입주자 이아무개(37)씨 부서 회의를 마치고 밤 11시께 귀가. 불을 켜니 노총각을 반겨주는 것은 엄지손톱만한 바퀴벌레. 청소를 안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주말마다 깨끗이 청소한다. 밥을 안 해 먹어서 쓰레기도 거의 없다. 아파트 승강기엔 석 달에 한 번씩 하는 정기소독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흘 동안 하니까 가능한 날을 고르라는데, 모두 평일 오전 또는 낮 시간이다. 주말에도 소독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기소독 휴가라도 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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