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2 18:00
수정 : 2005.01.02 18:00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우리 노동조합이 비정규노동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정책방향은 크게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 자신의 이해를 고려해야 할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손을 빌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봉사를 위한 사회단체가 아니라 경제적 이해를 달성하기 위한 배타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수행하는 정책이 단순한 선언적 효과를 얻는 데서 그쳐서는 안되고 조직원들의 이해에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먼저 비정규노동의 경제적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경기에 따라 노동시장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에서는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계층의 존재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비정규노동정책은 그것의 철폐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비정규노동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의 가격을 차별화함으로써 노동자들간의 경쟁을 부추기는데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잇따른 파업패배와 교섭력의 급격한 저하는 비정규노동의 임금조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대기업의 그것과 격차가 지나치게 커짐으로써 사회적 저항에 부딪친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노동의 열악한 임금조건이 대기업노동자들의 경제적 이해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정책의 초점을 두면 비정규노동 정책이 내부 조합원들의 이해와 결합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노동조합의 비정규노동 정책은 일차적으로 임금 및 노동조건의 사회적 보호기준의 확립에 맞추어져야 한다. 기업단위에서의 비정규노동의 정규직화는 기업 외부의 비정규노동의 열악한 임금조건을 그대로 방치하는 정책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최근 비정규노동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그것이 새로운 현상이라서가 아니라 기존에도 이미 있었지만 차별의 정도와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사회적 노동 보호기준을 만드는 방법에는 법률과 단체협약의 두 가지가 존재한다. 그런데 법률은 정치적 의제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주도할 수 없는 의제이다. 그것은 정당의 의제일 수는 있지만 노동조합의 의제는 아니다. 노동조합의 의제는 당연히 스스로 체결하는 단체협약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노동조합의 교섭구조가 사회적 단위로 개편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비정규노동은 초기업 수준의 노동시장 차별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비정규노동 정책은 자신의 교섭구조를 초기업적 단위로 개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을 이룬다. 그것만이 비정규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조직원이 되는 길이고 그럴 때에만 비정규노동 문제가 노동조합 자신의 진정한 문제로 되는 것이다. 비정규노동자의 가입을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에서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비정규노동 문제는 본질적으로 스스로와는 관련이 없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노동조합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나 비정규노동 문제의 진실한 해결을 위해서나 노동조합의 교섭구조 개편만이 비정규노동과 관련된 노동조합의 최우선적인 의제로 되어야 할 것이다.
강신준(동아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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