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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선시대에도 ‘마구잡이’ 수사는 없었다

등록 2006-11-28 22:51

1901년 8월 전주 부서면에서 술집 여주인의 남편인 이경선이 숨진 채 발견됐다. 군수 이삼응이 나선 조사에서 이경선의 부인 장씨는 “무능한 남편이 술 팔아 번 돈을 도박으로 날려 다툰 뒤 새벽녘에 집에 들어와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허리띠로 목을 매 죽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씨의 주검은 목을 맨 여느 주검처럼 두 주먹을 쥐고 있지 않았고, 눈동자는 튀어나오는 한편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리니 소리가 나는 등 중독사의 징후를 보였다. 군수는 장씨가 이웃 박사권과 전부터 내연의 관계였던 사실을 알아내고, 장씨를 상대로 남편을 독살했는지 추궁했다. 박사권의 부인 이광숙도 “장씨가 남편에게 양잿물을 타 먹였다고 말한 걸 들었다”고 증언했다.

간통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독살 혐의는 완강히 부인하던 장씨도 결국 남편 주검의 부검을 앞두고 범행을 자백하고야 말았다. “박사권이 시켜서 독살했다.” 장씨 등 사건 관련자들은 도주 행각을 벌이던 박사권이 2년 뒤 잡힐 때까지 옥에 갇혀 있었다.

박사권은 “무서워서 도망갔을 뿐”이라며 범행을 사주했다는 장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후 장씨 등 모든 관련자들은 말을 뒤집었고 사건의 유일한 증거이던 자백이 신뢰성을 잃게 됐다.

다시 사건을 넘겨받은 진산군수 서상경은 이광숙마저 옥중에서 숨지자 수사를 더 이상 진척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장씨의 행동이 미심쩍었지만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장씨와 박사권을 참형에 처하지 않은 채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이종호 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은 28일 서울 전경련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과학수사의 날 기념 학술 세미나에서 “조선시대에도 물증이나 증언이 확보되지 않으면 의법 처리할 수 없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였고 인권을 무시한 마구잡이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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