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험 회사의 텔레마케팅실. 기사 내용과 사진은 무관함.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카드사 텔레마케터가 말하는 전화마케팅의 세계
안녕하세요, 고객님. 상담원 ○○○입니다.
전화를 드린 이유는 우리 텔레마케터(TM)들의 고충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지금 카드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IMF가 터지고 나서 연체자들이 늘자 카드사에선 많은 수의 TM들을 뽑았지요. 사실 카드사에서 뽑는 것은 아닙니다. 카드사에 TM들을 파견하는 업체가 있습니다. 파견노동자인 셈이지요. 또한 대부분 비정규직입니다. 실적이 좋고 근무 연수가 많은 선배들 중에는 파트장이 되어서 카드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꿈같은 일이지요.
저는 2002년에 입사했습니다. 올해로 4년째네요. 이 정도 연차면 거의 ‘왕언니’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몇 달을 넘기지 못합니다. 며칠 나오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신입 교육이 거의 매일 이루어지고 있지요. 저는 카드회사의 고객 콜센터에서 일하는데 이 사무실에만 모두 300여명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만 이런 곳이 서울에 몇 군데가 더 있다고 하네요. TM들은 거의 대부분 여자입니다. 저처럼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엔 가정주부가 많이 늘었습니다. 대학 휴학생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구요. 가끔 남자들이 한 둘 왔었는데, 몇 달 근무하고 다 그만두더군요.
저는 아침에 8시30분에 출근해서 간단한 회의를 한 후 제자리에 앉습니다. 회의는 전날에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9시가 되면 자동적으로 컴퓨터가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전화번호는 전부 데이터베이스화(DB) 되어 있고 제가 전화번호를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이 받으시는지도 알 수 없구요.
전화 걸 때 대본 미리 정해져 있어, 9시간 동안 수백통 전화…대부분 목병
전화를 걸 때의 대본은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회사에서 사전에 나누어주지요. 이 대본 가운데 50% 이상을 읽으면 ‘성공콜’로 인정됩니다. 다른 회사에서는 시간으로 성공콜 기준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하더군요. 성공콜 체크는 저희가 직접 합니다. 간혹 고객님이 듣지도 않는데 TM들이 혼자서 말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으실 겁니다. 바로 이 때문이지요. 성공콜이 많아야 저희 월급도 제대로 나오게 됩니다. 전부 성공콜로 체크하면 되지 않냐구요? 그러다가 큰일납니다.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데 한 건이라도 부정 체크가 걸리면 모든 성공콜이 무효화됩니다. 이렇게 되면 거의 ‘퇴사’ 비슷하게 분위기가 흐릅니다. 일단 거의 없다시피하게 월급이 줄어들게 됩니다. 저희 월급은 아주 적은 기본급에 성공콜과 각종 계약건수를 합산한 인센티브가 합쳐진 것입니다. 인센티브가 없는 기본급은 80만원 정도 수준입니다. 하루 9시간 동안 몇 백통의 전화를 하는데 한 달에 80만원이라면 거의 약 값도 안나오는 실정입니다. 대부분 TM들은 목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 보호를 위한 캔디나 약 등은 필수적이지요. 부정 체크하다가 걸린 경우를 몇 번 봤는데 거의 퇴사를 하더군요.
대본 50% 이상 읽으면 ‘성공콜’ 인정돼…통화 100% 녹음돼 모니터링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모르셨나 보군요.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부터 고객님과 TM과의 대화는 모두 녹음이 됩니다. 나중에 이 것을 무작위로 추출해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자료들은 대부분 교육용 자료들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일부 회사에선 고객들 성향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된다는군요. 저희도 고객과의 통화가 녹음된다는 사실을 미리 공지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회사 차원에서 대책은 마련되고 있지 않더군요. 회사는 “나중에 고객이 말을 바꿀 때를 대비해서 녹음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쪽에 일하고 있지만 고객에게 알리지 않은 채 대화 전체를 일방적으로 녹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루에 보통 200~300통의 전화를 하다보니 정말 별별 고객님을 만나게 됩니다. 50% 이상은 처음부터 그냥 끊으시는 분들입니다. 그냥 끊으시면 양반이시지요. 다짜고짜 욕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전화를 거의 한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는데 전혀 실적이 나오지 않을 때는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하지만 정말 친절히 잘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기도 합니다. 로맨스는 없냐구요? 고객님께서 생각하시는 핑크빛 로맨스는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년 쯤인가 한 TM 앞으로 장미꽃이 배달되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목소리에 반했다나요?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기란 드뭅니다. 대부분은 TM들을 적대시 하시지요. “일방적으로 걸려온 전화 화난다고 성희롱성 발언 하진 마세요” 바쁘신데 매일 걸려오는 TM의 전화에 짜증이 나시지요? 하지만 우리 생각도 좀 해주세요. 고객님은 하루에 몇 통 수준이지만 우리는 하루에 몇 백 통을 건답니다. 고객님 계약은 안하셔도 좋으니 성공콜이라도 체크할 수 있게 멘트를 조금만 더 들어주실 수는 없나요? 한 몇 십초만 투자하셔도 우리에겐 커다란 힘이 된답니다. 그리고 참, 성희롱성 발언하지 마세요. 정말 ‘열라 짬뽕’납니다. 지난 10월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전국 8개 지역의 대인 업무 여성 종사자 4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1%(192명)가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여성 10명 가운데 4명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한 것이지요. 가뜩이나 힘든데 저희를 더 힘들게 하지 마세요. 여기까지 제 할 말을 했으니 오늘의 성공콜 하나가 올라갔네요.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상담원 ○○○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위의 글은 카드사에서 TM으로 다년간 근무중인 우아무개(26·여)씨의 인터뷰를 비롯해 관련 취재를 바탕으로 텔레마케터의 ‘콜’ 형태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한겨레〉온라인 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대본 50% 이상 읽으면 ‘성공콜’ 인정돼…통화 100% 녹음돼 모니터링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모르셨나 보군요.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부터 고객님과 TM과의 대화는 모두 녹음이 됩니다. 나중에 이 것을 무작위로 추출해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자료들은 대부분 교육용 자료들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일부 회사에선 고객들 성향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된다는군요. 저희도 고객과의 통화가 녹음된다는 사실을 미리 공지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회사 차원에서 대책은 마련되고 있지 않더군요. 회사는 “나중에 고객이 말을 바꿀 때를 대비해서 녹음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쪽에 일하고 있지만 고객에게 알리지 않은 채 대화 전체를 일방적으로 녹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루에 보통 200~300통의 전화를 하다보니 정말 별별 고객님을 만나게 됩니다. 50% 이상은 처음부터 그냥 끊으시는 분들입니다. 그냥 끊으시면 양반이시지요. 다짜고짜 욕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전화를 거의 한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는데 전혀 실적이 나오지 않을 때는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하지만 정말 친절히 잘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기도 합니다. 로맨스는 없냐구요? 고객님께서 생각하시는 핑크빛 로맨스는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년 쯤인가 한 TM 앞으로 장미꽃이 배달되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목소리에 반했다나요?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기란 드뭅니다. 대부분은 TM들을 적대시 하시지요. “일방적으로 걸려온 전화 화난다고 성희롱성 발언 하진 마세요” 바쁘신데 매일 걸려오는 TM의 전화에 짜증이 나시지요? 하지만 우리 생각도 좀 해주세요. 고객님은 하루에 몇 통 수준이지만 우리는 하루에 몇 백 통을 건답니다. 고객님 계약은 안하셔도 좋으니 성공콜이라도 체크할 수 있게 멘트를 조금만 더 들어주실 수는 없나요? 한 몇 십초만 투자하셔도 우리에겐 커다란 힘이 된답니다. 그리고 참, 성희롱성 발언하지 마세요. 정말 ‘열라 짬뽕’납니다. 지난 10월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전국 8개 지역의 대인 업무 여성 종사자 4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1%(192명)가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여성 10명 가운데 4명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한 것이지요. 가뜩이나 힘든데 저희를 더 힘들게 하지 마세요. 여기까지 제 할 말을 했으니 오늘의 성공콜 하나가 올라갔네요.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상담원 ○○○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위의 글은 카드사에서 TM으로 다년간 근무중인 우아무개(26·여)씨의 인터뷰를 비롯해 관련 취재를 바탕으로 텔레마케터의 ‘콜’ 형태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한겨레〉온라인 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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