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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본 원정 관광객’ 몰려드는 공단의 유흥문화 뒤엔…

등록 2007-01-03 15:11수정 2007-01-03 15:37

지난달 27일 밤 경기도 안산시 시화공단 정왕역 주변 거리에 주차된 차량에 이 지역 유흥업소들이 붙여놓은 전단지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건물 전체를 뒤덮은 노래방, 단란주점, 전화방 등의 간판이 공단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안산/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지난달 27일 밤 경기도 안산시 시화공단 정왕역 주변 거리에 주차된 차량에 이 지역 유흥업소들이 붙여놓은 전단지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건물 전체를 뒤덮은 노래방, 단란주점, 전화방 등의 간판이 공단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안산/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취재후기] ‘시화공단 밤문화’ 취재중 만난 도우미들
월 100만원 받던 노동자, 도우미 되니 200만원
국내 최대 중소기업단지 시화공단에 들른 것은 지난달 21일 저녁 8시께다. 1990년대 초부터 입주를 시작한 공단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워온 경기 시흥시는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겨우 30km 떨어져 있다. 정왕동에 소재한 ‘시화공단’과 ‘정왕역’ 도로표지판을 따라 도시를 1~2바퀴 둘러보았다. 달도 뜨지 않을 듯 이미 어둑한 공단을 지나면, 이내 반경 1km에 걸쳐 거대하게 펼쳐진 유흥지대(이마트 시화점 뒤쪽)를 만나게 된다. 건물마다 1~2개씩의 노래방, 단란주점이 빽빽하게 들어서 사방이 찬란하다. 눈치빠른 이방인은 대번에 알 것 같다. 도시는 밤마다 어김없이 둘로 나뉘고 누구도 이 공단 도시의 뒤틀린 밤 풍경에 시비걸지 않는다.

노래방 도우미 귀띔에 솔깃하다
“7층 통째 노래방하는 빌딩 있어요~”

지난해 11월초, 취재차 알게된 노래방 도우미 출신 김은지(20·가명)씨가 해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시화공단 가까이 유흥지대에 노래방만 2000곳이거든요, 심지어 7층이 통째 노래방으로만 채워진 건물도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 노래방, 유흥주점 없는 번화가는 없다. 오늘밤 세종문화회관을 끼고 있는 서울의 광화문 일대도 휘청거릴 게 뻔하다. 김씨가 쐐기를 박았다. “이용자의 70~80%가 공단 근로자예요. 뭐, 거기 말고는 갈 데가 없으니까요. 공단 근로자들 덕분에 크고 유명해지더니 서울, 인천, 분당에서도 시화공단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고, 이젠 일본인 관광객까지 여기 와서 놀다 가요.”

지난해 9월부터 2개월 가량 이곳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 김씨는 “한달에 한두번꼴로 일본인 관광객을 접대했었다”며 “일본인 관광객은 가볍게 웃돈으로 30만원씩을 건네기도 한다”고 말했다.

1962년 울산공단이 최초의 산업단지로 문을 연 이래 한국의 공단사는 성큼 반세기로 접어든다. 하지만 공단 일대는 노동자를 위한 문화와 복지는 실종된 채 소비향락 문화만 고도로 발달한 기형적 모습이다. 그 상징, 시화공단을 찾게 된 배경이었다.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요” 경계품다
“삼촌은 인상 좋아 소개소하면 잘할 것 같아”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요?” 기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이것저것 묻다 면박을 들었다. 이내 “도우미 소개소를 차리기라도 할 거냐”며 “삼촌은 인상이 좋아서 잘 할 것 같다”며 경계를 풀어준다. 21일 밤 10시께 시흥 정왕동 유흥가의 한 노래방에서 만난 이해원(26·가명)씨다. 3년전 강원도 영월에서 일자리를 찾아 시흥까지 건너왔다가 노래방 도우미가 된 지 이제 3개월이 넘었다.

“열에 일곱 정도는 공단 근로자인데 제일 짓궂어서 힘들다”며 지청구 놓지만 이해못할 바도 아니라는 눈치다. 그도 한때 시화공단에서 전자회로판을 조립(PCB)하는 노동자였다. 곧 그만 뒀다. 월급도 월급이지만 공단 일대의 환경 탓도 컸다. “일하고 자고, 밖으로 나가봐야 술집이고, 그게 전부였다”며 “공단 노동자라는 건 그야말로 삶의 질을 포기하고 기계처럼 일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이 불행을 낳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사고를 많이 쳐서 뒷처리하다가 빚만 졌다”는 이씨는 “결국 2주전에야 그놈과 헤어졌다.” 가족은 아직 ‘노래방 도우미, 이해원’을 알지 못한다.

자고 먹고 노래하고 일하고

공단은 개발시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끌차 구실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철야, 공순이, 공돌이 등의 단어로 상징되듯 노동자의 희생을 자양분 삼았다.

수위가 다를 뿐 지금도 여건은 비슷하다. 공단 도시의 문화·복지 시설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2005년 8월 시흥시가 집계한 시화공단 노동자의 보육 대상 아동은 1만3245명이다. 하지만 현재 공단 안에 설치된 어린이집은 딱 1곳. 겨우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올해 정원 77명도 보란듯 찼다.

시화공단이 있는 정왕동을 중심으로 성장한 시흥은 시로 승격된 89년 당시 9만여명이던 인구가 현재 39만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정왕동 주민만 14만5천명을 넘는다. 시 전체 유흥주점 10곳 가운데 7.5곳(217/289곳)이 정왕동에 있다. 휴게음식점도 70%(481/689곳), 단란주점도 절반 가량(16/34곳)이 이곳에 밀집해 있다.

영화관도 있긴 하다. 정왕역 바로 맞은 편, 딱 한곳이다. 종합사회복지관도 한곳이다. 도심 시설을 이용하거나 다른 주변 도시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시화공단 노동자 8만여명 가운데 60%가 인천, 안산 등 타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것으로 가늠하는 실정이지만, 지난해 초 문을 연 시화시외버스터미널에는 전주, 청주 등 원거리 지방 노선만 3개가 있다. 바이어를 접대할 곳도, 노동자끼리 쉴 곳도 여기가 전부인 셈이다.

공단 역사 반세기 만에, ‘노동자 문화향유 실태조사’ 첫실시

이런 현실은 도시 발전도 가로막는다. 2005년 시화공단은 전국 최초의 악취관리지역 가운데 하나로 지정됐다. 도시 주민과 공단 노동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나눈다. 시흥시 관계자는 “정부가 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단지)의 공해업소를 중심으로 이전시키며 시화공단을 조성하다 보니 주민들의 환경 피해 의식도 크고, 실제 수도권 도시 가운데 가장 낙후돼 있다”며 “공단에 대한 정부의 지원관리가 필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이처럼 ‘문화’가 메마른 열악한 주거현실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려 노동 현장에서 이들을 내모는 주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공단이 생긴 이래, 정부나 중소기업중앙회 등 책임있는 기관에서 전국에 산재해있는 공단(국가관리 산업단지는 31곳, 지방 산업단지는 228곳. 2006년 9월 현재 115만명)의 복지·문화 실태를 조사한 전례가 없다. 지난해 3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지시로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한국산업단지공단을 통해 실태가 아닌, 공단 복지·문화 ‘수요’조사를 한 게 유일했다. 당시 공단내 중소기업 800여개 가운데 89%는 연계교통수단, 80%는 체육시설이 공단의 복지·문화 시설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내 중소기업들은 ‘문화시설’을 가장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후 아무런 추가 조처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국무총리비서실 신인섭 서기관(노동심의관실)은 “실제 공단 환경은 열악했다”며 “애초 노동부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한 복지·문화 시설 지원사업을 구상했으나 원래 용도와 맞지 않았고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처도 예산 문제를 제기해, 보고만 한 뒤 끝냈다”고 말했다. 공단사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공단문화 관련 실태 조사의 끝이었다.

일대에 노래방 도우미 소개소만 30곳 넘어…공단 노동자 품삯의 2배

공단 노동자로 한달에 100만원 남짓 받았던 이해원씨가 노래방 도우미로 한 시간을 일하고서 받는 돈은 1만5천원이다. 노래방과 도우미 소개소에게 각각 5천원씩을 준 뒤다. 저녁 6시께 하루를 시작해 밤새 보통 4~5차례, 많게는 10차례까지 접대를 한다. 얼추 한달에 쥐는 돈이 150만~200만원을 오르내린다.

차라리 도우미가 더 전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노래방 도우미’가 불법으로 단속되기 시작했지만, 시화에선 여전히 공단 기업 월급날 같은 대목일마다 도우미가 달리는 실정이다. 이 일대 노래방 도우미 소개소만 30곳이 넘는다고 이들은 말한다. 21일 밤 들른 노래방도 6개 방이 모두 찼다. 때는 이미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겨레> 어젠다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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