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2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예비 판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컴퓨터활용취재기법으로 예비판사 출신고교 분석해보니
2010년 50% 이를듯…약자보호 소홀 우려
“상류층 가치관이 판결에 영향 미칠 개연성”
2010년 50% 이를듯…약자보호 소홀 우려
“상류층 가치관이 판결에 영향 미칠 개연성”
새로 임관하는 판사 가운데 상류층 또는 중상류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 강남지역의 고교와 서울의 외국어고 출신자 비율이 해마다 늘어 지난해에는 전체 신임 판사의 3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계층별 편중 현상이 심화되면 판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가 컴퓨터활용취재(CAR) 기법으로 2004∼2006년 3년간 새 예비판사의 출신 고교를 분석했더니, 전체 예비판사 가운데 서울지역 외고와 강남 학군(옛 8학군), 1998년까지 8학군에 포함됐던 송파구의 고교 출신 판사 비율이 2004년 14.91%에서 2005년 23.9%, 지난해에는 27.65%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2010년께에는 그 비율이 5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자칫 사회적 약자 보호에 소홀한 판례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동사건이나 세금 분쟁 등 사회정책과 관련된 행정소송이나, 헌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단순한 민·형사 사건에는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가령 종합부동산세 등 정책과 관련된 소송이나 헌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소송에서는 가정환경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이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의 한 부장판사는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택시기사에게 생계수단인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릴지에 대해, 없이 커 본 판사가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이라며 “하급심보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재판 때 법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15년 이상 근무한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판사는 비교적 임금이 많고 사회적 권력도 막강한 직업이므로, 존재기반 자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며 “의식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한 고위급 판사도 “합의제나 3심제는 법관들이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인데, 한쪽으로 편중되면 형평성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박근용 간사는 “법관들이 상류층에서 집중 배출되면 대기업 사건 등에서 편향된 판결을 내릴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부 교수가 2003년 <법과 사회>에 발표한 논문 ‘시민의 사법참여에 관한 헌법적 검토’를 보면, 독일에서는 1964년에 직업 법관의 절반 가까이가 최상위 계층에서 배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사법부는 또 70년대 초 엄격한 공직임용심사를 도입해, 68년 유럽을 휩쓴 ‘68혁명’에 참여했던 좌파 학생들이 판사로 임용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당시 독일 사회는 “사법부가 (상위)계급 편향성을 보인다”는 ‘사법의 신뢰 위기’ 논쟁에 휩싸였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편향성이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법관 재충원 과정과 혼인을 통한 경제적 지위 변동에 있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 기능이 ‘독립된 신분을 가진 특권적 귀족계급’으로 진입하기 위한 사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법원 사법정책실은 “일선 법원에서 이런 현상이 재판 진행이나 판결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은 들어보지 못했다. 따라서 특별한 대책도 없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외고+강남8학군 출신 판사 비율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자칫 사회적 약자 보호에 소홀한 판례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동사건이나 세금 분쟁 등 사회정책과 관련된 행정소송이나, 헌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단순한 민·형사 사건에는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가령 종합부동산세 등 정책과 관련된 소송이나 헌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소송에서는 가정환경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이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의 한 부장판사는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택시기사에게 생계수단인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릴지에 대해, 없이 커 본 판사가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이라며 “하급심보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재판 때 법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1964년 독일 법관들의 사회적 출신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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