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20년 됐지만 종철이 보낼 수 없는’ 아버지 박정기씨
연행뒤 7시간 40분 의문…과거사위 규명요청
최근 18개 언론 인터뷰…‘진상·처벌’ 안물어
‘진실과 정의’ 더뎌도 해야 하고 끝내 올 것
“마지막 눈물이란 게 있을까요? 이 생이 끝날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게 ‘자식’이란 이름이예요.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도 안되는 겁니다. 왜냐고요?”
14일로 경찰의 물고문으로 23살 박종철씨가 숨진 지 정확히 20돌이 됐다. 산 만큼의 세월이 또 흐르고 반도의 민주주의도 잠깨웠지만, 아버지 박정기(78)씨는 아직도 ‘종철이’를 놓아보낼 수가 없다.
“경찰이 87년 1월14일 신림동 하숙방에 찾아간 때가 자정인데, 이때부터 아침까지 7시간40분이 아직도 비어있어요.” 노구의 목소리가 커졌다. “1시간, 1시간이 무지무지 무서운 시간”이라며 “아직도 이 시간만 생각하면 오싹해진다”는 박씨는 “이 사이에 뭐가 일어났는지 낱낱이 밝혀지지 않는 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마다 이날이면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만 반쪽짜리 진실에 대한 추궁은 더이상 이뤄지지도 않는다. “특히 20주기가 됐다면서 보름새 찾아온 언론사만 18군데나 되는데, 사건의 진상이나 처벌에 대해선 이제 누구도 묻지 않더군요. 공소시효가 따로 있을 수 있나요? 안기부 등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은폐 시도 등) 잘못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들의 죽음은 부산시 공무원이었던 박씨를 민주 투사로 만들었다. 422일간 국회 앞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민주화운동보상법 제정을 이끌어냈고, 전국을 두바퀴 돌며 서명운동을 펼친 끝에 의문사진상규명위도 세웠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우리들(민주열사 유가족)이 늙은 몸을 이끌고 하는 것”이라며 “세상은 그렇게 해서 바뀐 것이고 살기 좋은 시대가 됐지만,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 노동 인권 문제 등 여전히 불합리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정치는 그다지 변한 것처럼 보이지 않은 듯했다. 박씨는 “정치인들, 자신들과 이해관계 없는 일은 형편없이 소홀히 한다, 나 역시 국회에서 그런 수모를 많이 당했고 여당 의원들한테도 ‘벽에 부딪히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이 민중의 의식과 요구 수준만큼 성숙지 못했다, 특히 386세대 정치인들도 현장에서 보고듣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지 않으면 생명이 길 수 없다”고 꼬집었다.
12일 인터뷰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오현규라네, 서울대 정문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을 때 영정 사진을 들고 맨 앞에 섰던 학교 후배라는군요. 추모식에 참석하겠다며. 20년을 모르고 지냈는데, 거참.”
거실 벽 한가운데 10년 넘게 걸려있는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우리 나이로 이제 딱 여든이 됐다”는 박씨에게 미움이 남아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 사건이 없었다면’이란 가정을 수도 없이 해봤어요. 종철이가 없었다면 나부터도 민주화 이런 거 모르고 지냈겠지, 바보처럼. 하지만 그 사건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정작 민주화의 의미도 깨우치는 행복을 얻은 건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데 관심없다면서요?”
박씨는 현재 과거청산위에 박종철기념사업회 명의로 박종철씨 사건 진상 규명을 공식요청해뒀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이 사과했다는 말은 애당초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유족뿐만 아니라 민중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진실과 정의는 더디게 온다고 했어요, 더뎌도 해야 하는 것이고, 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부산/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박종철군 고문치사 범인 은폐 조작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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