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의 속칭 ‘휴대폰 골목’ (사진=이정국 기자)
중학생·노인 등 무차별…부가서비스 끼워팔기 상혼 ‘배보다 배꼽’
“승용차도 없는 내가 달마다 차량네비게이션 요금 내야 한다니요?”
최근 SK텔레콤으로 휴대폰과 이동통신서비스회사를 바꾼 취업준비생 박아무개(31)씨는 지금도 요금고지서만 보면 화가 난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길안내 서비스인 ‘네이트 드라이브’ 요금을 1만8천원이나 냈기 때문이다. 박씨는 “취업한 친구들이 자가용 끌고 다니는 것을 봐도 가슴이 쓰린데 차도 없는 나에게 내비게이션 가입을 강요해 너무 황당했다”며 “하지만 판매점에서 네이트 드라이브에 가입하지 않으면 전화기 값을 5만원 더 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네이트 드라이브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박씨뿐만이 아니다. 역시 승용차가 없는 공무원 윤아무개씨(32)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콜 울트라 에디션 슬림폰’에 ‘필이 꽂혀’ 전화기를 사러 용산상가에 나갔다가 그냥 돌아와야 했다. 가게 직원이 자신에게 계속해서 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을 강권하는 바람에 언성을 높여 싸웠기 때문이다. 윤씨는 “몇 군데를 돌아봤는데 다른 건 몰라도 네이트 드라이브만은 꼭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며 “심지어 어떤 곳에선 네이트 드라이브 사용 요금을 현금으로 되돌려줄테니 가입만 해달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용산 휴대폰 상가 “다른 건 몰라도 네이트 드라이브는 의무”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직접 현장 취재에 나섰다.
지난 16일 〈한겨레〉취재진은 서울 용산의 이른바 ‘휴대폰 골목’을 찾았다. 휴대폰 판매점이 밀집한 이 골목은 휴대폰을 사러오는 손님들로 언제나 북적이는 곳이다. 한 가게에 들어가 요즘 잘 나간다는 SKT 가입을 전제로 ‘애니콜 울트라 에디션 슬림폰’(모델명 V900)으로 ‘견적’을 뽑아봤다.
가맹점 “우리도 어르신과 중학생들에게 강제가입 권유 쉽지 않아”
일단 문자포토500과 네이트 드라이브 요금만 합쳐도 1만7000원이니 휴대폰 한달 기본료(13000원)를 훌쩍 넘어 버린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자동차가 없는데 네이트 드라이브를 꼭 가입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판매원은 “네이트 드라이브를 안 하면 5만원을 더 내야 한다”며 “다른 서비스는 몰라도 네이트 드라이브는 꼭 가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여타의 부가서비스는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네이트 드라이브는 사실상 ‘필수’였다. 실제로 한 업소에선 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을 못 하겠다고 버티자 “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을 해주면 이 서비스 가입 의무기간인 두 달치 요금(1만8000원)을 현금으로 선지급하겠다”고 거꾸로 제안하기도 했다.
네이트 드라이브 요금제는 한달 기본료 5천원의 레저요금제부터 1만8천원의 프리미엄 요금제까지 다양하다. 이 중 가장 비싼 프리미엄 요금제는 길안내, 교통 정보, 레저 등의 정보를 무제한으로 받아 볼 수 있는 요금제이고 그 밖에는 기본으로 5~10회까지의 무료 길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당 900원의 추가요금을 받고 있다.
정작 휴대폰 기계 값은 대동소이했다. 이들이 견적을 뽑을 때 보는 견적표에는 V900모델은 똑같이 56만5000원으로 적혀 있었다. 여기에 부가서비스를 몇 개 더 가입하느냐에 따라 2만~3만 원의 가격차이가 났다. 한 판매점에서 “SK텔레콤은 왜 이렇게 부가서비스 강제 가입이 많으냐?”고 따져 물었다. 그제서야 점주는 “우리도 죽겠습니다. SKT가 제일 요구하는 게 많아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우리도 학생이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한테 네이트 드라이브를 강제로 권유하는 게 쉽지는 않다”며 “직영점에서 일정 수의 가입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압력이 내려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휴대폰을 구입하고 돌아가는 중학교 3학년인 정아무개(15)군은 “최신형 휴대폰은 대부분 네이트 드라이브에 가입하라고 해서 결국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 휴대폰을 구입했다”며 “학생인 내가 네비게이션을 어디에 쓰겠느냐”고 말했다. “차 없는 개인도 쓸 수 있다”해명하다 취재 들어가자 판촉 중단 ‘네비게이션 강권’의 배경에는 SK텔레콤쪽의 무리한 판촉프로그램이 있었다. SK텔레콤은 지난 12월에 각 대리점마다 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자를 한 명 유치할 때마다 3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가입자에게 두 달치 요금을 현금으로 선 지급 할 정도로 적극적인 마케팅의 원인은 바로 SK텔레콤 본사가 대리점에 지급하는 인센티브였던 것이다. SK텔레콤측은 <한겨레>와의 통화를 통해 “작년 12월에 경우 실적을 올리려고 적극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펴면서 원래 1만원 하던 인센티브를 3만원으로 올렸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며 “본사 차원에서 강제로 할당량을 대리점에 강요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을 권유한 휴대폰은 요새 인기가 많은 GPS 기능이 탑재된 일부 전화기이며 자동차가 없는 개인도 쓸 수 있다”며 “권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가 진행되자 18일 SK텔레콤측은 다시 전화를 해와 “네이트 드라이브에 대한 모든 판촉 활동을 접었다”며 “앞으로 시장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혀왔다. 정통부 과징금도 코웃음…편법으로 법망 피해 이에 대해 YMCA시민중계실 김희경 팀장은 “이통사의 부가서비스 끼워팔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부가서비스가 새로 출시될 때마다 피해사례가 접수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현재 이통사가 부가서비스로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자동차 없는 학생에게도 네비게이션을 권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라며 “정보통신부의 과징금 정도로는 코웃음도 안치는 이통사를 견제할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보호원 최은실 정보통신팀장도 “이통사의 부가서비스에 대한 민원은 종종 들어오지만 대부분 계약할 때 사용자의 동의서를 받는 일종의 편법으로 법망을 피해 나가고 있다”며 “이통사의 무리한 마케팅 전략 때문에 소비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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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은 인터넷도 예외는 아니다.
정작 휴대폰 기계 값은 대동소이했다. 이들이 견적을 뽑을 때 보는 견적표에는 V900모델은 똑같이 56만5000원으로 적혀 있었다. 여기에 부가서비스를 몇 개 더 가입하느냐에 따라 2만~3만 원의 가격차이가 났다. 한 판매점에서 “SK텔레콤은 왜 이렇게 부가서비스 강제 가입이 많으냐?”고 따져 물었다. 그제서야 점주는 “우리도 죽겠습니다. SKT가 제일 요구하는 게 많아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우리도 학생이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한테 네이트 드라이브를 강제로 권유하는 게 쉽지는 않다”며 “직영점에서 일정 수의 가입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압력이 내려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휴대폰을 구입하고 돌아가는 중학교 3학년인 정아무개(15)군은 “최신형 휴대폰은 대부분 네이트 드라이브에 가입하라고 해서 결국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 휴대폰을 구입했다”며 “학생인 내가 네비게이션을 어디에 쓰겠느냐”고 말했다. “차 없는 개인도 쓸 수 있다”해명하다 취재 들어가자 판촉 중단 ‘네비게이션 강권’의 배경에는 SK텔레콤쪽의 무리한 판촉프로그램이 있었다. SK텔레콤은 지난 12월에 각 대리점마다 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자를 한 명 유치할 때마다 3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가입자에게 두 달치 요금을 현금으로 선 지급 할 정도로 적극적인 마케팅의 원인은 바로 SK텔레콤 본사가 대리점에 지급하는 인센티브였던 것이다. SK텔레콤측은 <한겨레>와의 통화를 통해 “작년 12월에 경우 실적을 올리려고 적극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펴면서 원래 1만원 하던 인센티브를 3만원으로 올렸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며 “본사 차원에서 강제로 할당량을 대리점에 강요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네이트 드라이브 가입을 권유한 휴대폰은 요새 인기가 많은 GPS 기능이 탑재된 일부 전화기이며 자동차가 없는 개인도 쓸 수 있다”며 “권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가 진행되자 18일 SK텔레콤측은 다시 전화를 해와 “네이트 드라이브에 대한 모든 판촉 활동을 접었다”며 “앞으로 시장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혀왔다. 정통부 과징금도 코웃음…편법으로 법망 피해 이에 대해 YMCA시민중계실 김희경 팀장은 “이통사의 부가서비스 끼워팔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부가서비스가 새로 출시될 때마다 피해사례가 접수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현재 이통사가 부가서비스로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자동차 없는 학생에게도 네비게이션을 권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라며 “정보통신부의 과징금 정도로는 코웃음도 안치는 이통사를 견제할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보호원 최은실 정보통신팀장도 “이통사의 부가서비스에 대한 민원은 종종 들어오지만 대부분 계약할 때 사용자의 동의서를 받는 일종의 편법으로 법망을 피해 나가고 있다”며 “이통사의 무리한 마케팅 전략 때문에 소비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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