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검토 중인 대표적 공안사건 판결들
지난해 10월 보고서 국회 제출
사법부안 위원회 설치엔 반대
사법부안 위원회 설치엔 반대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법사위 소속 의원들에게 6천여건의 과거 시국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법원 과거사 관련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대법원은 보존기간이 지났으나 폐기되지 않은 6천여건 중 당사자들이 고문당했다고 주장하는 224건을 추렸다고 밝혔다.
국회에 보고된 사건에는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광주민주항쟁 진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돌린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아람회’ 사건과, 86년 제주도의 관공서 위치 등을 북한에 보고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희철씨 간첩 조작 사건 등 군사독재 정권 때의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들이 포함됐다. 224건 가운데 60%가 넘는 141건이 간첩사건이었고, 긴급조치 위반사건 26건, 반국가단체 구성사건 13건, 민주화 운동 사건이 12건이었으며, 32건은 기타 사건으로 분류됐다.
형량은 무기징역과 사형이 각각 34건과 21건이었고, 징역 10∼20년의 중형도 30건이었다. 또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한 사건도 1건 있었다. 반면, 무죄·면소·무죄취지 파기환송은 14건, 선고유예는 2건이었다.
대법원은 이 보고서에서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사법권이 침해됐음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70년∼80년대에는 남북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국내 경제도 어려워, 당시의 헌법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이나 사법권 독립에 앞서 국가 안보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당시 시국사건의 범죄사실을 보면, 현재의 판례와 시대상황에 비춰볼 때 처벌 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여지도 없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관련 법률이 시행된 초기에는 매우 엄정한 형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양형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형량이 낮아져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법부 안에 별도의 기구나 회의체를 만들어 이런 문제 판결들을 바로잡는 방안에는 반대했다. 사법부 과거사 문제가 재판업무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므로 과거사 규명이 오히려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보고서에서 “사법부 안에 행정기구인 위원회를 설치하면 ‘행정기구가 재판 절차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되고, 또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대상이 대부분 사법부 과거사와 관련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따라서 관련 사건에서 법리의 재구성, 재심 사건을 통해 사법부의 입장을 밝히는 방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그 근거로 국가기밀과 이적표현물 관련 판례가 변경됐음을 제시했다. 또 옛 시국사건에서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데 악용돼 온 검사 작성의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한 판례도 법정에서 당사자가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도록 변경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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