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밤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주최로 열린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촛불집회에서 엄마를 따라온 한 어린이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FTA타결에 절망 “희망없는 더러운 세상 살지말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비관한 40대 농민이 친구 등에게 공기총을 난사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참극이 일어났다.
3일 밤 11시40분께 경북 예천군 호명면 노아무개(48)씨 집에서 함께 술자리를 하던 농민회 간부 이아무개(44)씨가 공기총 4발을 노씨와 노씨의 아들(22), 이웃주민 ㅇ(43)씨에게 발사했다. 이 사고로 노씨가 그자리에서 숨지고, 노씨의 아들 등 2명이 중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당시 노씨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하던 이씨는 잠시 나갔다 온다며 술자리를 떠난 지 5분 뒤 집에서 보관하던 직경 5.0㎜ 수렵용 공기총을 갖고 돌아와, “세상이 끝났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희망없는 더러운 세상 너희들도 살지 말라”며 노씨 등에게 총을 난사했다. 이씨가 쏜 실탄 4발은 노씨 가슴과 ㅇ씨 턱에 박혔고, 총소리에 놀라 달려나온 노씨 아들의 팔과 옆구리를 맞혔다. 노씨 아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총을 떨어뜨린 이씨는 사건 발생 현장에서 50여m 떨어진 자신의 집 앞에 세워져 있던 1t 화물차를 타고 사라졌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ㅇ씨는 “우리들은 네것 내것이 없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며 “이씨가 에프티에이 타결 소식을 들은 뒤 잠을 못 이뤘다”고 말했다.
이씨는 고향 예천에서 고교를 마치고 군 제대 뒤 도시로 나갔다. 기술을 배워 대구에서 용접기계 제작업을 하던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귀농했다. ‘정직한 땅은 자신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정부의 전업농 육성방침에 맞춰 부모 땅 6천여평에, 농지구입자금을 빌려 땅을 더 사들였고, 남의 땅까지 빌려 모두 2만여평의 벼농사를 지었다. 농협에서 빌린 자금은 제때 갚아 나갔고, 여러 농민단체 간부도 맡는 등 겉으로는 성공한 귀농인이었다.
하지만 이씨의 속은 썩어들어갔다. 비탈논에서 힘겹게 짓는 논농사의 수익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2004년 쌀 개방까지 되자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함께 시작했던 과수농사도 수지가 맞지 않아 3∼4년 전 나무를 모두 뽑아버렸다. 참외·고추 등 하우스 재배도 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노부모를 모시고 중·고생 두 자녀를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활로를 찾아나선 이씨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그나마 수지가 맞는다는 한우였다. 2005년 말께 1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축사 120여평을 짓고, 송아지 40여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가진 돈을 모두 밀어넣고도 모자라 농협에서 빚까지 얻었다. 한때 인근 ㅅ대학 축산과(야간)를 다니는 등 전문성도 키웠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이씨는 갈피를 못잡고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아직 수입은 얼마 안 되는데 사료값은 계속 들어갔다. 동업으로 구입했던 콤바인도 넘겼다. 그 사이 누적된 농협 빚만 1억4천여만원이었고, 친구들에게 수천만원씩 개인빚까지 얻어 빚은 갈수록 늘어났다. 휘청거리던 이씨에게 에프티에이 타결은 결정타였다. 송아지 값이 수십만원이 떨어졌다는 언론보도까지 들렸다. 마지막 희망으로 선택했던 한우마저 미래가 없다는 것이 여러 번의 실패로 지친 이씨를 궁지로 몰았다. 협정 타결 직후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절망하던 이씨는 이날 낮부터 과도한 술을 마셨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넋을 잃고 서성이던 이씨 어머니(70)는 “도시에서 못 살고 고향으로 왔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예천/박영률, 전진식 기자 ylpak@hani.co.kr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이씨는 갈피를 못잡고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아직 수입은 얼마 안 되는데 사료값은 계속 들어갔다. 동업으로 구입했던 콤바인도 넘겼다. 그 사이 누적된 농협 빚만 1억4천여만원이었고, 친구들에게 수천만원씩 개인빚까지 얻어 빚은 갈수록 늘어났다. 휘청거리던 이씨에게 에프티에이 타결은 결정타였다. 송아지 값이 수십만원이 떨어졌다는 언론보도까지 들렸다. 마지막 희망으로 선택했던 한우마저 미래가 없다는 것이 여러 번의 실패로 지친 이씨를 궁지로 몰았다. 협정 타결 직후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절망하던 이씨는 이날 낮부터 과도한 술을 마셨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넋을 잃고 서성이던 이씨 어머니(70)는 “도시에서 못 살고 고향으로 왔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예천/박영률, 전진식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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