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기술직 일하다 47살에 영업직 발령
오랜 동안 기술직으로 일하다 명예퇴직을 거부해 영업직으로 발령받고 우울증을 앓게 됐다면, ‘업무 스트레스 탓’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강아무개씨는 1980년 ㈜케이티에 입사한 뒤 전화국에서 시설수리 등을 담당하는 기술직으로 일했다. 케이티는 외환위기 뒤 구조조정을 명목으로 2003년 10월 5500명 규모의 명예·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고객시설과에서 일하던 강씨도 지점장으로부터 명예퇴직 권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같은해 12월 강씨를 갑자기 영업부 상품판매 전담직원으로 발령냈다. 회사 쪽은 “강씨가 근무평점에서 3년 연속 최저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강씨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1997년부터 2년 동안 노동조합 지부장 활동을 했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강씨를 포함해 기술·교환직으로 일하다 영업부로 발령된 4명은 영업부의 기존 직원들과 달리 판촉물 지원도 없이 개인을 상대로 한 인터넷서비스 판매에 내몰렸다. 결국 강씨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병원치료를 시작했고 근로복지공단은 같은해 10월 강씨의 요양 신청을 승인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 김정욱 판사는, ㈜케이티가 “강씨의 주장만 듣고 우울증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결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기술직 직원을 영업직에 보낸 것 자체는 부당하지 않다”면서도, “강씨가 평소 낙천적이라는 평을 듣다 영업부에 전보된 뒤 우울증이 발생했고, 23년 이상 기술직에 있다가 47살의 나이에 영업부서로 발령받은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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