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무너진 탈북형제의 인생역정
꿈꾸던 남한 온지 4년…다단계회사에 돈 날려
‘돈 벌수있다’ 유혹 넘어가 히로뽕 밀매하다 쇠고랑
‘돈 벌수있다’ 유혹 넘어가 히로뽕 밀매하다 쇠고랑
함경북도 온성에 살던 형 유아무개(27)씨와 동생(24)은 2003년 두만강을 건넜다. 탈북자. 남쪽을 꿈꿨고, 다음달 남으로 왔다.
이듬해 6월 중국 칭다오, 베트남, 캄보디아를 떠돌던 부모, 형수, 조카 등 가족 7명도 한국으로 왔다. 형 유씨와 아내 김아무개(24)씨는 11평 아파트를 정부로부터 받았다. 적지만 정착지원금도 꼬박꼬박 모았다. 피자·중국음식 배달에 시급 4천원짜리 휴대전화 조립 일도 마다지 않았다.
성실함을 인정받은 형은 피자집 부점장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한 달 150만원으로 ‘인생역전’은 불가능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없다는 걸 몰랐던 형은 다단계회사에 투자했다가 1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중국 베이징 한국영사관 보호시설에서 만났던 탈북자 이아무개(42)씨로부터 지난 1월 “집 구경을 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인천 남동구에 있는 이씨의 집은 18평 아파트. 물소가죽 소파에 대형 벽걸이 텔레비전까지 들여놓았다. “어떻게 돈을 벌었냐”는 물음에 이씨는 “중국에서 ‘얼음’(히로뽕)을 들여와 팔면 큰돈이 된다”며 넌지시 유씨를 찔렀다. 파지를 모아 파는 아버지와 자궁암 수술을 한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파트 평수를 늘리자”는 아내의 바가지도 생각났다. 지난 2월17일 중국에서 히로뽕 400g을 몰래 들여왔다. 4월에는 동생과 부인까지 끌어들였다. 유씨 형제와 이씨가 들여온 히로뽕은 모두 1.54㎏. 시가 51억여원에 5만여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는 8일 마약을 밀반입해 팔고 투약한 80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이씨와 형 유씨 등 5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반기수 마약수사대장은 “잘살아 보려고 목숨 걸고 나온 거 아니냐는 말에 형제가 눈물을 떨궜다”고 말했다.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형제의 앞날에 무겁게 내려앉은 법정형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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