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사고 나서 누워 있는 몸에 옷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5학년 최아무개군의 얼굴은 창백했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3학년 최아무개군도 그랬다. “너무 무서웠어요. 어젯밤에는 잘 자서 걱정이 안 됐는데, 오늘 낮에 계속 생각이 나고…. 오늘 밤에도 잘 잘 수 있을지 겁나요. 우리 누나는 어제 사고 난 반인데, 친구들하고 부둥켜안고 막 울었대요.”
전날 학부모 2명이 소방 안전교육 도중 숨진 서울 중랑구 ㅇ초등학교는 18일 소리 없는 공포가 감싸고 있었다. 4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 김아무개(41)씨는 “어젯밤에 불을 껐더니 아이가 잠을 못 자고 안방으로 왔다”며 “가족들이 다 같이 손잡고 한참을 있은 뒤에야 아이가 겨우 잠이 들었다”고 전했다. 사고가 난 굴절차에 직접 탔던 아이다.
학교는 아이들의 안정을 위한다면서 사건 자체를 언급하기 꺼리고 있다. 아이들끼리 사고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선생님들이 바로 나타나 대화를 막았다. 아이들은 이날 4교시 수업만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19일은 재량 휴일로 수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그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하게 현실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충격이 더 오래갈 수 있다”며 “기억을 되살리면 아이들이 괴로워할 것을 두려워해 감추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날 학교보건진흥원의 정신과 의사 2명이 이 학교를 찾아 사고가 난 반 아이들을 상대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학교 쪽은 앞으로도 몇차례 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씨는 “목격한 아이들 모두에게 위기조정 상담을 30차례 정도 계속 해야 한다”며 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뒤늦게 “21일부터 소아정신과 전문의 5명을 학교에 투입해 충격을 크게 받은 학생들을 개별 상담하고 치료에 나서는 한편, 전문상담교사 12명을 학급별로 배치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재가 빚은 참사로 두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것도 안타깝지만, 그 끔찍한 현장을 지켜봐야 했던 아이들의 여린 영혼에 긴 상처가 남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런 경우에 대비한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점도 슬픈 현실이다. 아이들을 악몽 속에 놓아둬서야 될 일인가, 이 화창한 5월에.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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