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씨는 2002년 8월 ㅎ씨에게서 결혼 제의를 받았으나 ㅎ씨의 이혼 경력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자 ㅎ씨는 ㅈ씨를 때리고 차에 태우고 다니며 흉기를 들이대며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ㅎ씨는 ㅈ씨 몰래 혼인신고를 하기도 했다. 2004년 9월에는 공기총을 들고 ㅈ씨 집 앞으로 승용차를 몰고 가 “ㅈ씨를 데려오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승용차에 불을 지르는 등 난동을 부렸다.
당시 ㅈ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은 사태가 진정되자 철수했다. ㅈ씨는 사흘 뒤 경찰서로 가 “ㅎ씨가 더는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구속해 달라”며 고소장을 냈다. 그러나 경찰은 ㅈ씨가 ㅎ씨 아이를 임신한 사실 등을 근거로 단순한 애정 문제로 판단하고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일 뒤 ㅎ씨는 ㅈ씨의 직장으로 찾아가 임신한 태아의 상태를 물었다. “아이를 지웠다”는 대답에 격분한 ㅎ씨는 ㅈ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ㅈ씨의 부모는 경찰이 신변보호 요청을 묵살해 ㅈ씨가 살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주기동)는 24일 “경찰의 직무상 과실이 ㅈ씨의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국가가 ㅈ씨의 부모에게 3500여만원씩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소장이 제출된 상황을 고려할 때 ㅈ씨가 명시적으로는 자신과 가족의 신변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으나 묵시적으로는 요청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경찰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수사를 신속히 진행하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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