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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자리에서 여성에게 술을 따르도록 권한 행위가 객관적으로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면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초등학교 교감 김아무개씨는 2002년 9월 최아무개씨 등 여성 교사 3명이 포함된 3학년 교사 전체 회식에 참석했다. 남성 교사들만 술을 마시고 교장에게 술을 권하자, 김씨는 여성 교사들한테 ‘술을 마신 뒤 교장에게도 권하라’는 취지의 말을 두 번 했다. 여성 교사 2명은 마지못해 교장에게 술을 따랐지만, 최씨는 이에 응하지 않다 교장으로부터 술을 한 잔 받은 뒤 술을 따랐다.
최 교사는 며칠 뒤 “교감이 교장에게 술을 따르도록 강요해 성적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꼈다”며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여성부는 김 교감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판단하고 시정조처를 권고했다. 하지만 김씨는 “성희롱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고, 1·2심은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도 15일 “회식에 참석한 다른 여성 교사 2명은 성적인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며 “객관적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만한 행위가 아니라면,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성희롱이 성립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성희롱 문제에서는 피해자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법원이 성평등에 역행하는 보수적 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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