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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국이여, 투표권을 달라”

등록 2007-06-28 19:39수정 2007-06-28 22:06

재외동포 시민운동 결실
제도개선 10여년간 호소…헌재결정 8년만에 바꿔
1970년 고려대학에 유학 온 재일동포 이건우(55)씨는 당시 한국의 암울한 정치 상황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다시 생각했다. 국민투표로 독재를 합리화하는 정부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그런 투표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이 처지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욱이 72년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과 독일에 나간 광부와 간호사에게 인정되던 부재자투표 제도조차 없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제도를 바꿔보자’고 결심한 이씨는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하지만 일본 동포들은 소극적이었고, 한국 사회는 냉담했다. 또 외교부는 재외국민을 그 나라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동화정책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지쳐가던 이씨는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조국이 민주화되는 모습을 보며 다시 재외국민 참정권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95년 12월 김영호 유한대 학장(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함께 ‘재일국민의 조국 참정권 회복을 위한 시민연대’를 만들고, 재일국민 참정권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재일동포가 역사의 유산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10여명 모였다.

이들은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회에만 수십 차례 찾아가 진정서를 냈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97년 대선 때는 대선 후보 진영을 모두 방문해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인정하겠다’는 공약을 얻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씨는 97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지만, 99년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받았다. 이씨는 “그 때 정말 눈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운동과 관련해 <한겨레21>에서 처음으로 특집 보도를 한 뒤, 조금씩 공감대가 확산됐다.

점차 사람도 모이기 시작했다. 시민연대 회원은 10명에서 120여명으로 불었고 일본에만 회원이 70여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올해는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 퍼져 있는 재외국민들도 함께하는 ‘재외동포 참정권연대’라는 단체도 생겼다. 그리고 결국 헌재는 28일 8년 만에 옛 결정을 뒤집었다.

이씨는 “우리의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국회에 조속한 법 개정을 요구해 이번 대선부터 우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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