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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장애인·노인에 무료 이발…아름다운 ‘사랑의 이발소’

등록 2007-07-11 03:08수정 2007-07-11 15:39

‘사랑의 이발소’ 운영하는 차운용씨
‘사랑의 이발소’ 운영하는 차운용씨
지체장애 2급 차운용씨 7년째 ‘사랑의 이발소’ 운영
지체장애 2급 차운용씨
7년째 ‘사랑의 이발소’ 운영
“할 줄 아는게 이것뿐이어서…”

덥수룩한 머리와 허름한 차림새의 김인만(54·가명)씨가 이발소에 들어선다. “머리가 이게 뭐야? 이리 와 앉아.”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그를 이발 의자에 앉힌 차운용(71)씨는 조용히 머리를 깎기 시작한다. “이 친구는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해. 여기 아니면 어디 가서 머리를 깎겠어?”

이발소 문밖에는 김씨의 딸(26)이 기다리고 있다. 차씨는 “딸도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데 아버지가 걱정되는지 같이 온다”고 말한다. 10㎡ 남짓한 공간에 이발대 하나, 의자 하나가 전부인, 소외된 사람들의 이발소. 차씨는 서울 강북구 번2동 주공아파트 5단지에 자리잡은 ‘사랑의 이발소’ 전속 이발사다.


‘사랑의 이발소’ 운영하는 차운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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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건강이 나빠져 몸져누웠던 차씨는 평생 남을 위해 뭔가 해 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건강을 되찾은 그날로 을지로 상가를 찾아 중고 이발대와 이발용 의자를 산 그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부탁해 2층 창고에 이발소를 꾸몄다. 같은 해 3월부터 7년째 65살 이상 노인과 장애인의 머리를 공짜로 깎아 주는 차씨는 평생 이발 가위를 잡느라 움푹 팬 엄지손가락과 약지를 만지작거리며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어서…”라고 말한다.

1952년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군 입대를 위해 대전역에서 논산훈련소로 가던 그는 수송 트럭이 구르는 사고로 척추를 다쳤고 지금까지 걸음이 불편하다. 지체장애 2급. “아무래도 몸이 불편하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날 때도 있다”는 차씨는 “그래도 머리 자르고 나서 ‘다른 데서는 돈 주고 깎아도 여기처럼 꼼꼼히는 안 해 주더라’는 말을 들으면 피로가 싹 풀린다”고 한다.

다행히 올해부터 여기저기서 지원이 들어오고 있어 한숨 돌리긴 했지만, 기초생활 수급권자인 그에겐 이발소 비품 값도 만만찮은 부담이다. 하지만 ‘공짜로 하지 말고 500원씩이라도 받는 게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뜸 “그럼 봉사가 아니잖아”라고 답한다.

오후 2시께, ‘드르륵’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이번엔 안민수(56·가명)씨가 들어선다. “형님, 안녕하세요?” 어눌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는 안씨는 언어장애 3급이다. 차씨는 녹차를 우려낸 물에 커피를 타 그에게 건넨다. “요즘 뭐 하고 지냈어?” “비 와서 집에 있었어요.” “그러면 쓰나? 젊은 사람이 뭐라도 해야지.” 잠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차씨는 가위를 들고는 입을 다문다. 이윽고 이발이 끝나자, 안씨가 빗자루를 손에 든다. “내 머리카락인데, 내가 치워야지요.” 차씨는 쓱쓱 빗자루질 하는 그의 등을 가만히 두드린다.

글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viator@hani.co.kr
영상 이규호 피디recrom295@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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