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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비리고발 해고자 구자홍 회장 고소했지만 조사없이 “무혐의”

등록 2007-07-26 05:09

‘왕따 메일’ 사건과 정국정-엘지전자 사이의 고소사건 일지
‘왕따 메일’ 사건과 정국정-엘지전자 사이의 고소사건 일지
경찰은 출석요구서만 두차례 보내
회사는 대리인 보내 조사받아
검찰은 사흘만에 불기속 처분

사내 비리를 고발한 뒤 해고된 대기업 직원이 당시 대표이사를 경찰에 고소했으나, 경찰이 대표이사에게 출석요구서만 두 차례 보낸 뒤 결국 직접 조사 없이 무혐의 의견을 냈고, 검찰은 사흘 만에 불기소 처분했다.

25일 검찰 및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엘지전자 출신 정국정(44)씨가 모해증거인멸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구자홍(61) 엘에스그룹 회장(전 엘지전자 대표)을 지난 6일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북부지검은 추가 수사 없이 사흘 만인 지난 9일 구 회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 왜 3번째 고소?=엘지전자에 다니던 정씨는 1996년 회사와 하청업체의 납품 비리를 감사팀에 고발한 뒤 1999년 5월 김아무개 대리가 보낸 ‘왕따 전자우편’을 동료들을 통해 건네받았다. △정씨의 아이디(ID) 회수 및 피시 사용 금지 △회사 비품을 정씨에게 빌려주는 행위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씨는 원본 전자우편을 보낸 김씨를 추궁해 “홍아무개 컴퓨터고객지원실장이 메모해 적어준 대로 적었기 때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뒤 이 문구를 추가해 문서를 하나 만들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회사 쪽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회사 쪽은 다음해 1월 직무 태만 등을 이유로 정씨를 해고했다. 회사는 또 같은해 7월 당시 구자홍 대표이사 이름으로 “정씨가 왕따 전자우편을 조작했다”며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정씨가 원본 전자우편에 문구를 추가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러나 불구속 기소된 정씨는 무죄 선고를 받았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한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다. 서울남부지검이 불기소 처분을 하자 정씨는 항고했고, 서울고검은 김씨를 직권 기소하면서 구 회장 등에 대한 재수사를 명령했다. 김씨는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서울남부지검은 결국 구 회장을 조사하지 않은 채 다시 무혐의 결정했다.

정씨는 이후 자신을 고소했던 구 회장을 두 차례에 걸쳐 서울중앙지검에 각각 무고와 무고 교사 혐의로 고소했다. 무고란 죄가 없는 사람을 고소하는 등의 범죄다. 그러나 검찰은 무혐의 결정 뒤 고검의 거듭된 재기수사 명령에도 구 회장을 조사하지 않고 계속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정씨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 4월 말 구 회장을 경찰에 세번째 고소했다. 그는 고소장에서 “구 회장은 왕따 전자우편이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마치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나를 모해할 목적으로 전자우편 내용을 변조했으며, 오히려 내가 전자우편을 위조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왕따 전자우편 원본을 은닉했다”고 말했다.

■ 조사도 않고 무혐의=동대문경찰서는 5월17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서면으로 구 회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당시 소환 이유에 대해 전혀 입을 열지 않던 경찰은 최근에야 “당시 엘지전자 대표였던 구 회장이 자신의 명의로 고소장을 냈다”며 “대기업의 최종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출석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 회장은 이에 응하지 않고 5월 말부터 대리인을 보내 경찰이 요구하는 자료를 냈다. 경찰은 더는 출석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은 최근에야 “자료를 충실히 내고 수사에 협조하는 피고소인을 고소장만으로 구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무혐의 의견을 낸 이유에 대해 “구 회장이 직접 왕따 전자우편 내용 변조를 지시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몇 년에 걸쳐 반복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뒤집을 만한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고검 “구 회장 직접 조사 필요”=구 회장 쪽은 “대표이사가 한 사원의 고소 사건까지 알 수는 없고, (고소장에 대표이사의 인감이 찍혀 있지만) 200개가 넘는 인감의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모두 알 수는 없다”고 말해왔다. 자신이 직접 고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고검은 2002년 정씨가 김씨를 고소해 서울남부지검이 무혐의 처리한 사건에 대한 재기수사 명령을 내리면서 “기업 전체 차원에서 진상 은폐 등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엘지전자 자체 조사 과정에서 왕따 전자우편의 존재를 언제 확인했는지, 위조가 아님을 알게 됐음에도 고소를 제기했다면 무고 혐의는 있는지 등에 대해 구 회장 등을 상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8월 정씨가 구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2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대표이사는 직원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발생한 문제를 임직원들이 대표이사 명의로 고소하거나 법정에서 위증을 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막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직원들과 정씨를 둘러싼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를 방조한 책임이 있다”며 간접적으로 구 회장의 책임을 인정했다. 검찰과 법원이 모두 최소한 구 회장을 직접 조사할 필요는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정씨는 구 회장 개입 여부와 관련해 “왕따 메일을 확인한 직후인 1999년 7월 신라호텔에서 구자홍 회장을 만나 왕따 전자우편이 발송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구 회장에게 직접 메일 원본과 내가 만든 문서를 전달했다”며 “인사기획팀장이 다음달 구 회장에게 ‘컴퓨터고객실 정국정 대리 탄원서 관련 경과보고’를 하자 구 회장이 ‘필요시 CU장(구자홍 회장)/정 사장과도 협의합시다’라고 자필로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 회장이 왕따 전자우편의 진상을 알고도 나를 고소했고, 김 대리가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곧바로 회사에 취업한 것은 윗선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며 “검찰과 경찰이 구 회장을 수사할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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