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 서울고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정몽구(69)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재홍(51) 서울고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나도 착잡하다. 재판부도 장시간 격한 토론을 했고, 심지어 택시기사와 음식점 종업원에게도 (이번 재판에 대해) 물었다”는 말로 공판을 시작했다. 또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하고 재벌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재판부로서) 달게 받겠다”며 ‘고심의 결정’임을 내비쳤다.
이 부장판사는 공판 뒤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국가경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재판부가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건 도박”이라며 “집행유예 5년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족쇄를 차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돈으로 형을 면하게 하는 선례를 남긴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구속하는 것보다 사재를 환원하는 게 국가적 이익이 될 것이다. 정 회장 개인으로서도 고통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7년 사법시험 19회에 합격한 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지난 2월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로 임명됐다. 형사 쪽보다는 ‘민사통’으로 분류되며, 같은 기수 사이에서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도 꼽힌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 6월 불법 다단계 판매 영업으로 2조1천억원대의 사기를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주수도(50)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하며 주씨를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이카루스’에 비유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를 잘 아는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사회봉사 명령 선고에 대해 “종종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다. 사법정책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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