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외신 ‘정회장 집유’ 에 쓴소리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두고 주요 외신들이 7일 한국 사법부의 기업범죄 척결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적 보도를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날의 서울고법 판결을 전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정 회장의 가치를 거론하며 징역형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 것은 사법부의 부패 척결 의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하던 한국 사법부의 풍토가 정 회장한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계기로 변화 조짐을 보였지만, 이번 판결로 이런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과 함께 세계 양대 경제지로 꼽히는 <파이낸셜타임스>는 재판정을 나서는 정 회장의 사진을 아시아판 1면에 내면서 “10억달러짜리 자유”라는 제목을 달았다. 정 회장이 거액 기부를 약속하고, 법원이 이를 집행유예의 이유로 삼은 것을 빗댄 표현이다. 이 신문은 “정 회장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고,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삼성그룹 계열사 전직 경영자들에 대한 실형 선고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바뀐 점도 소개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번 판결은 한국에서 유력한 세력인 동시에 논란의 대상인 재벌을 둘러싼 논란을 재연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부 외신들은 재판부가 관대한 형량의 이유로 ‘국익’을 강조한 점도 자세히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경제와 현대자동차에서 정 회장의 역할을 강조한 현대 쪽의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였다며, 그러나 정 회장의 실제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꼬집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수출의 7%를 담당하는 기업의 회장을 구속하는 게 부담이 간다는 재판부의 설명에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이런 시각은 현대차가 1인 지배 회사라는 점도 부각시킨다고 전했다. 현대차가 진정으로 세계 5대 자동차회사 진입을 노린다면 더는 가족기업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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