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가 열린 11일 오후 한 의원이 자신의 의석에 설치된 컴퓨터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간의 사적 이메일 교환’ 기사가 실린 <인터넷 한겨레>를 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검찰 수사 어디로
검찰이 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35) 전 동국대 교수를 위해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는지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변 전 실장의 행위에 따라 직권남용 또는 업무방해, 범인은닉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직권남용=검찰은 변 전 실장이 동국대 교수 임용이나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대기업에 신씨의 미술 전시회를 후원하도록 압력을 넣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씨는 성곡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눈에 뜨일 정도로 대기업들로부터 후원을 유치하는 수완을 보였다. 당시 후원을 했던 대우건설 사장과 산업은행 총재는 모두 변 전 실장과 같은 고교 출신이다.
검찰이 이런 부분을 살펴보고 있는 것은 변 전 실장이 직권남용을 저질렀는가를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형법의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신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 과정에 도움을 줬다는 의혹부터 먼저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신씨가 동국대에 임용된 2005년 9월 변 전 실장은 대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기획예산처 장관이었다. 또 신씨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에 선임된 올해 7월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해, 직권남용죄를 구성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죄는 자신의 직무 범위 안에 있는 사안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만 적용돼, 혐의 입증이 매우 어렵다”며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때도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사장에게 전화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압력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고 말했다.
■ 업무방해=신씨는 미국 예일대 학위를 위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국대도 신씨를 사문서 위조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변 전 실장이 신씨가 가짜 학위를 이용해 동국대 교수가 되거나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에 선임되도록 도움을 줬다면 두 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신씨의 공범으로 형사처벌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변 전 실장이 신씨의 가짜 학위 사실을 미리 알았을 때만 적용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변 전 실장이 신씨가 예일대 후배인 줄 알고 동국대 쪽에 ‘잘 봐달라’고 했다면 아무런 죄가 안 된다”고 말했다. 업무방해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 범인은닉=이렇듯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의 경우 범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검찰은 범인은닉 및 도피 혐의는 비교적 입증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7월5일 파리로 출국했던 신씨는 12일 귀국했다가 16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뒤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신씨가 가짜 학위가 드러난 뒤 미국으로 도피하는 과정에 변 전 실장이 개입했다는 사실만 밝히면 형법의 범인은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변 전 실장 계좌에서 해당 시기에 뭉칫돈이 출금된 사실이 확인된다면 (변 전 실장이 신씨의 해외 도피를 도왔을) 개연성이 있다”며 “신씨가 미국으로 도피해 장기간 생활할 수 있는 돈이 어디에서 났는지도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범인은닉 혐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조만간 변 전 실장의 집이나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법 151조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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