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범인 몰린 50대에 무죄 선고
지난해 7월 최아무개씨는 누군가 자신의 집 현관문을 드라이버로 부수는 장면을 목격했다. 도둑이라고 생각한 최씨는 범인과 격투를 벌였고, 범인은 최씨를 드라이버로 내리친 뒤 도망쳤다. 최씨는 112에 신고해 ‘범인이 키 167~168㎝에 60대, 얼룩무늬 상의에 흰색 벙거지 모자를 썼다’고 설명했다. 20분 뒤 벙거지 모자에 하늘색 셔츠, 슬리퍼를 신은 손아무개(50)씨가 최씨 집에서 300m 떨어진 골목길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손씨는 근처 슈퍼에 다녀오는 길이었지만 최씨는 그를 보자마자 “저 사람이 범인이 맞다”고 지목했다. 손씨는 상해 및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19일 “용의자의 인상착의로 범인을 식별할 때 용의자 한 사람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킨 것은 신빙성이 낮다”며 손씨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단독 대질은 기억력의 한계와 용의자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다”며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려면 사전에 목격한 인상착의를 기록한 뒤 용의자를 포함해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1·2심 재판부는 △일대일 대면 모의실험에서 용의자를 잘못 지목할 확률은 40~50%에 이르며 △살상무기를 들고 있을 경우 목격자의 주의가 범인의 인상착의가 아닌 무기에 쏠리는 ‘무기효과’ 등을 들어 손씨의 무죄를 선고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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