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일보 사건’ 재심 첫 공판
편지전달 혐의 양실근씨 증언
편지전달 혐의 양실근씨 증언
“참 오랜 세월 이 자리, 이 시간을 기다려왔습니다.”
10일 오전 46년 만에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 재심 첫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73)씨와 함께 피고인석에 선 양실근(75)씨가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양씨는 <민족일보> 쪽의 편지를 재일동포 이아무개씨에게 전달한 혐의로 1961년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양씨는 61년 6월 평소와 다름없이 물건을 싣고 부산세관에 갔다가 군인들에게 연행됐다.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2년7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63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소했지만, 정보기관으로부터 ‘요시찰 대상이기 때문에 시외로 나가려면 신고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간첩 남편’을 기다리다 못한 양씨 부인은 68년 한국에 와 이혼 도장을 받고 떠나갔다.
양씨는 보안관찰처분이 끝난 93년에야 두 딸을 만나러 일본에 갈 수 있었다. 30년 만이었다. 두 딸은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이유로 평생 손가락질 받은 것도 모자라 파혼까지 당한 상태였다. 아버지와 말을 섞는 것도 거부하는 딸들을 뒤로 하고 양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신적 충격과 폐병을 앓던 양씨 둘째딸은 98년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50대인 큰딸은 현재 일본에서 독신으로 살고 있다.
양씨는 “매형을 통해 안면이 있던 민족일보 인사가 부탁한 편지는 이미 검열을 거친 것들이었는데, 왜 내가 민족일보 사건에 엮였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간첩 아버지를 원망하며 저 세상에 갔을 작은딸, 홀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큰딸에게 ‘양실근이 무죄’라는 판결문을 들고 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현재 ㈜일중건설 대표로 99년 중국인 부인을 맞아 뒤늦게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민족일보 사건은 혁명재판부가 61년 ‘사회대중당 간부로서 북한의 활동에 고무 동조했다’는 이유로 조 사장에게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소급 적용해 사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지난해 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민족일보 사건에 대해 위법했다고 결정을 내리자 조씨 양씨가 올해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지난 8월 받아들여졌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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