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징계·피해배상 요청…“보호 매뉴얼 실제 활용을”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여성이 경찰에 몇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한 뒤 결국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김아무개(44·여)씨는 지난 1월10일 “1년여 동안 사귀어온 중학교 동창 김아무개(44)씨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자 김씨가 ‘살해하겠다’며 위협하고 목을 졸랐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병원 진단서를 제시하며 “김씨를 구속시켜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광주 북부경찰서 ㅇ 경위는 “구속이 어려운 사건이며 피해자가 감수해야 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가해자가 구속되지 않으면 더 해코지 당할 것이 두려워 경찰 신고를 철회했다.
이틀 뒤 가해자 김씨가 출근하는 김씨의 차에 뛰어들어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자, 김씨는 다시 경찰을 찾았다. 김씨는 경찰에 사건 경위를 설명하면서 ‘접근금지’ 조처를 요청하고 구속이 가능한 사안인지 거듭 물었다. 하지만 ㅈ 경위는 “가족이 아니면 (가정폭력 사건에만 적용되는) 접근금지 신청을 할 수 없다”며 “협박을 당하는 내용을 일기 등으로 기록하면 상습성이 인정돼 구속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조사를 끝냈다.
이튿날인 13일 피해자 김씨는 자신의 승용차에서 수십차례 흉기에 찔려 숨졌고, 가해자 김씨도 자신의 집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의 쌍둥이 동생은 “두 차례나 신변보호를 요청했는데도 경찰이 이를 묵살해 처참한 일이 일어났다”며 지난 3월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이에 인권위는 16일 “경찰이 신변보호 요청을 묵살해 피해자가 살해된 것은 생명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광주경찰청장에게 해당 경찰서장과 경찰관을 각각 주의·징계 조처하도록 권고했다. 또 인권위는 김씨 유족이 범죄 피해자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ㅇ 경위와 ㅈ 경위는 인권위 조사에서 “피해자가 신변보호 요청을 한 사실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명시적으로 ‘신변보호 요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녹화 내용과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김씨가 살해 위협을 호소하고 계속 도움을 요청해 신변보호 요청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또 “피해자가 살해 위협을 증명하기 위해 상해진단서까지 제시하고 접근금지에 대해 문의했으면,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 미수나 상해, 폭행 등 범죄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수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침해구제본부의 강철아 조사관은 “ㅇ 경위는 ‘25년 동안 경찰로 일하면서 한 차례도 신변보호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경찰은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협을 신고받거나 경찰관이 스스로 인지할 경우 신변보호를 하도록 범죄 피해자 보호 매뉴얼에 나와 있는데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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