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돈 눈먼 고국 ‘동포의 꿈’ 훔쳐

등록 2007-10-21 21:15

‘재일 조선학교 살리기’ 시작도 못해보고…
폐축전지 남북교역 사업 벌이려던 동포3세
남쪽 업체, 돈 받고 물건 안줘 딱한 처지에

운영 위기에 빠진 민족학교를 살려내기 위한 돈을 벌러 입국한 재일동포가 거래업체인 한국 업체의 계약 불이행으로 오도 가도 못할 처지에 놓였다.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 안길조(43)씨는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가 6달째 교직원 급여를 주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는 사실을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자신도 민족학교인 아이치 조선초등학교를 나왔고, 대학 졸업 뒤엔 모교에서 교사로 일한 적도 있는 터라 안씨의 안타까움은 컸다.

“해방 직후부터 60여년 동안 학생들이 공부해 온 터전을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북한에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사업을 하고 있던 안씨는 지난해 초, ‘남북 교역사업으로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를 살릴 재원을 마련하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리랑 공연을 주관하는 북한 무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남한에서 차량·선박용 폐축전지를 사들여 북한에서 분해작업을 한 뒤 성분 별로 중국에 판다’는 구상이었다.

민족학교 교사들의 도움 속에 북한 쪽 업체와 계약을 맺은 안씨는 지난 5월 입국해, 같은달 21일 남한의 한 업체와 폐축전지를 1t당 320달러에 매달 200t씩 사기로 계약을 맺었다. 또 5월30일까지 폐축전지 100t을 받기로 하고 일주일 앞서 대금 3만2000달러를 입금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계약 날짜까지 폐축전지를 선적하지도, 대금을 환불해 주지도 않았다. 더구나 이 돈은 북쪽 무역회사에서 미리 지급한 대금이어서 안씨의 입장은 더 난처하게 됐다. 안씨는 “한국 업체는 번번이 ‘이행을 곧 할 것이니 기다려라’, ‘대금을 반환했는데 계좌번호를 잘못 눌러 송금이 안된 모양이다’ 등 변명만 할 뿐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 상대방인 국제에너지자원개발 이종선 사장은 〈한겨레〉와 전화 통화에서 “대금 결제가 늦어지며 폐축전지 값이 많이 오르는 바람에 회장이 직접 남미에 축전지를 구하러 갔다”며 “우리도 지금 회장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씨는 “계약 당시 국제에너지자원개발 쪽이 ‘이미 준비된 폐축전지가 300t 정도 있다’고 말했고, 계약 이틀 만에 송금을 했다”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혈혈단신으로 들어온 안씨의 삶도 어려워졌다. 숙소를 잡을 돈도 떨어져 친인척 집을 전전했지만, 다들 “북에서 받은 돈으로 사업을 한다”는 그의 말에 함께 지내기를 꺼려하는 기색이었다. 결국 주변에 폐를 끼치기 싫었던 그는 재중동포 쉼터를 찾아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안씨는 “민족학교를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한국까지 왔는데, 이제 면목이 없어 일본에 돌아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 오대석 남북교역팀장은 “폐축전지는 반출 승인이 필요한 품목도 아니고 북쪽 업체에서 물품 대금으로 받은 돈도 남북교류협력법에 비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