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비밀계좌 실태 충격
명의 도용·실명제법 위반 처벌 대상
명의 도용·실명제법 위반 처벌 대상
김용철 변호사의 공개로 드러난 금융기관의 비밀계좌 운용 실태는 충격적이다. 본인 몰래 계좌가 개설되고, 거액이 드나드는 데도 정작 계좌 주인은 그 내역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 태연하게 벌어진 것이다.
“다른 지점에선 거래내역은 물론 계좌번호도 알 수 없었다”는 김 변호사의 진술에 미뤄볼 때, 김 변호사의 명의를 도용한 ‘누군가’가 우리은행의 시크리트(Secret) 뱅킹 서비스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은 프라이빗 뱅킹(PB) 고객을 위해 보안을 대폭 강화한 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 피비사업단 관계자는 “시크리트 뱅킹 서비스는 계좌를 개설한 본인과 해당 지점의 직원 이외에 누구도 거래내역 조회는 물론, 계좌 존재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본인 당사자가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고 우리은행 쪽은 말했다. 계좌 개설자의 동의를 받았더라도 대리인을 통한 계좌 개설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김 변호사는 계좌 개설용으로 인감증명서와 위임장을 아무에게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재직 시절 우리은행 직원이 삼성본관빌딩 27층에 있는 재무팀으로 직접 올라와 계좌신청서 등을 작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은행과 삼성이 차명계좌 개설에 공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변호사의 명의를 도용한 사람과 계좌를 개설해준 해당 은행은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해당 은행 직원이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감증명서나 위임장, 주민등록증 사본 등의 서류가 ‘훌륭하게 조작’됐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은행 직원은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명의를 도용한 사람은 명의 도용 목적에 따라 자금세탁이나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 사건이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면, 금감원의 검사국은 진위 파악을 위해 의혹을 받고 있는 은행을 상대로 실명제법 위반 관련 검사를 한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실명제법 위반은 중대사안이기 때문에 분쟁조정 차원이 아니라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금감원 검사에서 실명법 위반이 확인되면, 해당 은행과 직원은 모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 직원은 “금감원의 검사와 검찰의 수사 등을 통해 실명제법 위반 여부가 확정되고, 나아가 차명 계좌를 사용한 주체가 확인되면 금융기관은 기관대로 과태료 등 처벌을 받게 되고, 차명 계좌 사용 주체 역시 자금세탁방지법 등 또다른 법률의 저촉을 받아 형사처벌된다”고 밝혔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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