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관과 국내에서 가장 큰 모래언덕으로 유명한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변에서 8일 뿔논병아리 한 마리가 유조선에서 쏟아져 나와 해안까지 밀려온 기름을 뒤집어쓴 채 숨져가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르포] 원유 유출 피해현장
기름띠 계속 확산, ‘양식밀집’ 가로림만도 오염 ‘비상’
민관군 사흘째 총력방제…오염범위 너무 커 ‘역부족’
기름띠 계속 확산, ‘양식밀집’ 가로림만도 오염 ‘비상’
민관군 사흘째 총력방제…오염범위 너무 커 ‘역부족’
쪽빛 맑은 바다로 유명한 충청남도 태안 해안 국립공원은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 죽음의 기름띠는 남쪽 근소만에서 북쪽 원북면 학암포까지 40여㎞에 늘어서, 해안의 목을 조르고 있다. 이 지역 어민과 상인들에게도 짙은 절망감이 드리우고 있다.
넓은 백사장으로 이름난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은 폭 50m에 이르는 검은 기름띠가 2.5㎞ 해안을 온통 뒤덮었다. 밀물에 다시 밀려든 원유는 덩어리져 옹벽과 바위 틈에 자리잡았고, 기름띠는 이미 모래사장 밑으로 30㎝ 정도 스며들었다. 만리포 주민들은 아침 7시께부터 바닷가에 나와 군장병 등과 함께 ‘방제작전’을 펼쳤지만, 밀려드는 검은 파도가 야속할 뿐이었다. 만리포에서 방제작업을 하던 국희열(64)씨는 “허리 굽혀 온종일 작업 해봤자 파도 한 번 몰아치면 말짱 도루묵”이라며 “애초에 안이하게 대처해 일이 이 지경이 된 것 아니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름유출 사흘째를 맞은 9일 유출된 기름의 80% 가량이 해안에 도달했다. 나머지 기름은 계속 확산돼 남쪽 방어선인 근소만을 위협하고 있다. 피해는 이미 기름에 뒤덮인 굴·바지락·전복 등 어장과 양식장을 넘어 해양생태계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태안 해안 국립공원은 절반 가까이가 이미 초토화됐다.
국내 최대의 해안 모래언덕인 신두리 사구는 독특한 경관과 해당화 군락 등으로 유명했지만, 이번 원유 누출 사고로 언제 제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다. 동물 피해를 조사하던 유해조수 구제단 이종만(51)씨는 “고라니, 너구리 등이 염분을 섭취하러 해안에 내려와 해초를 먹곤 하는데, 독한 기름 때문에 이제 이곳을 떠날 것”이라며 “예전의 사구 모습은 이제 영영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화재청에서 파견한 긴급합동조사단은 오염 실태를 살폈고 주민과 봉사단은 방제작업에 여념이 없었지만, 해안 깊숙이 올라온 기름띠는 곧 사구를 삼킬 태세다. 태안군청 문화관리과 장경희 계장은 “밀물이 밀려오는 사리가 되면 기름띠가 더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며 “사구를 지키기 위해 방책선을 두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두리에서 1km 가량 떨어진 원북면 의항 포구에서는 주민들에게는 방제작업조차 여의치 않았다. 굴 종묘를 붙여놓은 1m 높이 나무 포자틀에 굴과 원유찌꺼기가 들러붙었지만, 인력도 물자도 부족한 탓이다. 주민 문경연(64)씨는 “다들 모래사장에 가 있고 질척한 개펄에는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굴농사가 겨울에는 가장 큰 수입원인데, 다음 학기에 복학하는 막둥이 학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오염된 개펄은 표면을 모두 긁어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태안군에만 개펄 면적은 100㎢에 이른다. 바위와 자갈에 붙은 기름 제거에도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이충경(38) 의항어촌계장은 “기름을 걷어내도 2~3년 뒤에는 유화제로 굳혀 놓은 기름 덩어리가 올라올 테고, 정말 답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의항 포구에 펼쳐진 개펄에는 숨어있던 고둥들이 깊숙이 스며든 기름독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나와 언제일지 모를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조로 물이 깊이 올라온 2시께 겨우 손을 쉬고, 기름냄새 속에서 생라면을 씹는 태안군 어민들의 얼굴에는 고단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수평선에 놓인 해상크레인과 괴물 같은 유조선이 닿는다. 태안/노현웅 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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