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검은 파도 확산에 어민들 “내 속도 검게 탄다”

등록 2007-12-10 20:26수정 2007-12-11 08:29

아름다운 모래 언덕에 소나무가 자라는 특별한 풍광으로 유명한 충남 태안군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10일 오전 불가사리가 검은 기름에 덮여 죽어가고 있다. 태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태안 현지 르포
“굴 까서 손주교육 보탰는데” 아흔 넘은 어부 망연자실

충남 태안 해안을 뒤덮은 기름띠는 10일 바다 위를 부유하는 ‘암세포’로 변해가고 있다. 바람과 물살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흐르며, 태안군의 경계를 넘어섰다. 바닷가에 달라붙었던 기름덩이는 물이 들고나며 더 넓게 퍼져 기름 독을 퍼뜨리고, 바다 위에 떠있는 원유는 물살에 따라 마른 논처럼 바다를 갈라놓으며 흘러갔다.

양식장이 걱정돼 배를 타고 나간 어민들은 바다를 떠다니는 시커먼 기름을 보며 “저 모양 좀 보라”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김경자(46)씨는 “바닷가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름을 닦아내느라 사람들이 몰려있는 사이에 이 바다는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날마다 굴을 따던 거친 손에는 하늘색 방제복만 힘없이 들려있었다.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에서 10일 오후 자원봉사자와 경찰, 군인 등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끝없이 밀려드는 기름을 퍼 통에 담고 있다. 태안/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식장들은 처참했다. 태안군 곳곳에 자리한 포구 주변에 빙 둘러쳐진 굴 양식장은 검은 장막이 돼버렸다. 일일이 손으로 붙여놓은 굴 종자는 채 자라지도 못하고 포구 위로 끌어올려졌다. 미역을 걸어둔 양식용 어구과 굴을 걸어놓던 종패 나무 말뚝에는 검은 기름이 들어붙었다. 힘없이 바위에서 떨어지는 어린 전복과 돌게, 해삼은 기름 속에서 건져놓자 이내 죽어버렸다.

태안 오염 재해 지역
양식장을 둘러보던 김인식(61)씨는 “원래 끈질기게 붙어있어야 하는 건디, 살짝만 건들어도 떨어지잖유”라며 어린 전복들과 해삼들을 갯바위에서 건져냈다. 힘이 빠진 건 해양 생물들 뿐만이 아니다. 이상규(47)씨는 배를 타고 방제 작업을 하다 메스꺼움을 호소하며 구토를 했다. 이씨는 “원래 건강한 편인데 밤새 속이 편하지 않았다”며 “마을의 노인분들도 어지러움증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근해 양식장을 지나 앞바다를 향해 나아갔지만 풍경은 더 처참했다. 바다 곳곳에는 엷은 기름이 햇빛에 반사되어 불투명한 기름 무지개가 비치고 있었다. 굴 양식을 하고 있는 안 바다와 바깥 바다를 막아놓은 오일펜스는 힘없이 출렁였다. 바다 곳곳에 설치된 부표와 깃발도 이미 기름에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의항호’의 키를 잡고 바다를 둘러보던 김동설(48)씨는 “올해는 꽃게 어장이 잘 돼 어민들 얼굴에 웃음꽃이 폈었는데, 이제는 곡소리가 들리고 있다”며 “꽃게 통발이 있는 곳에 표시해 놓은 부표와 깃발이 기름에 검게 변한 것을 보면 속도 타들어간다”고 말했다.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나흘째인 10일 오후 충남 태안 앞바다 양식장이 기름띠에 둘러싸여 있다. 태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90여년 동안 태안에서만 살아온 이명월(95)씨는 네 명이 빠듯하게 앉을 만큼 비좁은 작업장에서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굴까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16살 먹어서부터 봄, 여름에는 바위 사이의 조개 따고, 겨울에는 굴을 까서 손자, 손녀들 교육에 보탰는디, 이제는 깔 굴도 없다”고 버려진 굴껍데기 무덤만 멍하니 바라봤다.

태안/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