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이름’을 남기고 간 사람들-국내
2007 ‘이름’을 남기고 간 사람들-국내
‘맑은 영혼’ 권정생·피천득…‘영욕의 삶’ 이원조·신현확
‘민주 헌신’ 윤한봉·김동완…‘역사 증인’ 이인모·권중희
‘예술의 혼’ 김응현·김순애…‘안타까운’ 송익득·이애정 시간의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가신 이들이 남긴 희노애락과 영욕의 자취는 흐르는 강물 아래 쌓여 묵묵히 역사가 된다. 2007년에도 우리는 많은 이들의 떠남을 지켜봐야 했다. 5월17일 ‘강아지 똥’처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세상에서도 생의 아름다움을 말할 줄 알았던 동화작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몽실언니>, <강아지 똥>의 작가 권정생(70)씨의 삶은 많은 이들한테 가난하고 핍진하며 ‘오물덩이에 뒹구는’ 삶이 왜 아름다운 동화인지 삶으로,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같은 달 25일엔 영원한 수필가로 기억되던 피천득(97)씨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장엔 마음을 위로하고 정화하는 그의 수필 작품과 순수한 삶을 기리는 조문객의 발길이 길게 이어졌다. 현대사의 무대에 오르내렸던 여러 인물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5·6공 당시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으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옥살이를 했던 이원조(74)씨가 별세했으며, 정·관·재계를 두루 누비며 한때 ‘티케이(TK)의 대부’로 불린 전 국무총리 신현확(87)씨가 영욕의 삶을 접었다. ‘80년 5월의 마지막 수배자’라는 별명을 얻은 윤한봉(60)씨가 고문과 투옥, 밀항 등으로 나빠진 건강 탓에 1994년부터 투병생활을 해오다 6월27일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윤씨는 5·18 민주항쟁의 배후 주동자로 수배되자 미국으로 밀항해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93년 수배가 풀린 뒤 귀국해 사회활동을 해왔다. 민주화와 빈민운동에 헌신했던 ‘빈자들의 목자’ 김동완(65)씨가 갑작이 찾아온 뇌졸중으로 숨을 거둬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비전향 장기수로 1993년 3월 북송된 이인모(89)씨가 북한에서 한 많은 분단 역사를 다 증언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진상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온 권중희(71)씨, 독도 의용수비대원으로 활동했던 김경호(79)씨가 고인이 됐다. 스타들의 죽음과 투병기는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스포츠 중계의 달인이던 <문화방송> 아나운서 송인득(48)씨가 5월 간경화로 쓰려져 열흘 만에 눈을 감았다. 미남 탤런트 김주승(46)씨가 1997년부터 앓아오던 췌장암으로 세상을 떴으며,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아역을 맡았던 이애정(20)씨가 뇌종양으로 스무 살의 생을 마감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 연기자로 재기했던 홍성민(67)씨는 눈물겨운 투병기를 남긴 채 떠났다.
재계에선 현대가의 안주인인 변중석(86)씨가 앞서 간 고 정주영 회장의 곁으로 떠났으며, 기업인과 부총리, 소설가로 살았던 이수그룹 명예회장 김준성(87)씨가 ’다재다능’의 삶을 접었다. 기업은행장 강권석(57)씨, 오양수산 회장 김성수(85)씨,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이회림(90)씨,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 박경복(85)씨가 유명을 달리했다. 예술계에선 서예계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인 여초 김응현(80)씨가 ‘광화문 현판 글씨를 언젠가 쓰겠다’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났으며, 최초의 여성 작곡가 김순애(87)씨, ‘한국춤의 역사’로 불리던 김천흥(98)씨가 고인이 됐다. 체육계에선 1950~60년대 씨름판을 주무르던 원로 김학용(72)씨, 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김성은(64)씨,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최은택(66)씨가 세상을 떠났다. 전 대법원장 민복기(94)·이일규(87)씨, 탐구당의 대표인 원로출판인 홍석우(89)씨, <잊혀진 계절>의 작사가 박건호(58)씨, 카이스트 통합 초대 원장을 지낸 물리학자 이주천(77)씨도 한 생을 마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민주 헌신’ 윤한봉·김동완…‘역사 증인’ 이인모·권중희
‘예술의 혼’ 김응현·김순애…‘안타까운’ 송익득·이애정 시간의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가신 이들이 남긴 희노애락과 영욕의 자취는 흐르는 강물 아래 쌓여 묵묵히 역사가 된다. 2007년에도 우리는 많은 이들의 떠남을 지켜봐야 했다. 5월17일 ‘강아지 똥’처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세상에서도 생의 아름다움을 말할 줄 알았던 동화작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몽실언니>, <강아지 똥>의 작가 권정생(70)씨의 삶은 많은 이들한테 가난하고 핍진하며 ‘오물덩이에 뒹구는’ 삶이 왜 아름다운 동화인지 삶으로,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같은 달 25일엔 영원한 수필가로 기억되던 피천득(97)씨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장엔 마음을 위로하고 정화하는 그의 수필 작품과 순수한 삶을 기리는 조문객의 발길이 길게 이어졌다. 현대사의 무대에 오르내렸던 여러 인물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5·6공 당시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으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옥살이를 했던 이원조(74)씨가 별세했으며, 정·관·재계를 두루 누비며 한때 ‘티케이(TK)의 대부’로 불린 전 국무총리 신현확(87)씨가 영욕의 삶을 접었다. ‘80년 5월의 마지막 수배자’라는 별명을 얻은 윤한봉(60)씨가 고문과 투옥, 밀항 등으로 나빠진 건강 탓에 1994년부터 투병생활을 해오다 6월27일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윤씨는 5·18 민주항쟁의 배후 주동자로 수배되자 미국으로 밀항해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93년 수배가 풀린 뒤 귀국해 사회활동을 해왔다. 민주화와 빈민운동에 헌신했던 ‘빈자들의 목자’ 김동완(65)씨가 갑작이 찾아온 뇌졸중으로 숨을 거둬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비전향 장기수로 1993년 3월 북송된 이인모(89)씨가 북한에서 한 많은 분단 역사를 다 증언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진상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온 권중희(71)씨, 독도 의용수비대원으로 활동했던 김경호(79)씨가 고인이 됐다. 스타들의 죽음과 투병기는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스포츠 중계의 달인이던 <문화방송> 아나운서 송인득(48)씨가 5월 간경화로 쓰려져 열흘 만에 눈을 감았다. 미남 탤런트 김주승(46)씨가 1997년부터 앓아오던 췌장암으로 세상을 떴으며,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아역을 맡았던 이애정(20)씨가 뇌종양으로 스무 살의 생을 마감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 연기자로 재기했던 홍성민(67)씨는 눈물겨운 투병기를 남긴 채 떠났다.
재계에선 현대가의 안주인인 변중석(86)씨가 앞서 간 고 정주영 회장의 곁으로 떠났으며, 기업인과 부총리, 소설가로 살았던 이수그룹 명예회장 김준성(87)씨가 ’다재다능’의 삶을 접었다. 기업은행장 강권석(57)씨, 오양수산 회장 김성수(85)씨,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이회림(90)씨,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 박경복(85)씨가 유명을 달리했다. 예술계에선 서예계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인 여초 김응현(80)씨가 ‘광화문 현판 글씨를 언젠가 쓰겠다’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났으며, 최초의 여성 작곡가 김순애(87)씨, ‘한국춤의 역사’로 불리던 김천흥(98)씨가 고인이 됐다. 체육계에선 1950~60년대 씨름판을 주무르던 원로 김학용(72)씨, 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김성은(64)씨,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최은택(66)씨가 세상을 떠났다. 전 대법원장 민복기(94)·이일규(87)씨, 탐구당의 대표인 원로출판인 홍석우(89)씨, <잊혀진 계절>의 작사가 박건호(58)씨, 카이스트 통합 초대 원장을 지낸 물리학자 이주천(77)씨도 한 생을 마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