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리’ 의혹이 불거진 뒤 칩거해 온 이건희 삼성 회장이 공개 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삼성그룹 고위 임원은 이날 오후 늦게 “이건희 회장이 28일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전경련 회장단 등 경제인과의 모임에 참석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임원은 “최근 삼성을 둘러싼 여건이 좋지 않지만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기업 총수가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투자 활성화를 위한 자리에 빠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참석 배경을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9월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 보고대회’에 참석한 이후 공개 행사에 한번도 나서지 않았다. 지난 10월 재계 총수들이 대거 동행한 남북 정상회담에도 건강을 이유로 수행단에서 빠졌다. 특히 지난 10월 말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리’의혹을 폭로한 뒤에는 모든 대내외 활동을 접은 채 사실상 칩거 생활을 해 왔다. 지난달 19일 부친 이병철 회장 20주기 추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추도식은 비공개 가족 행사로 축소해 놓고도 당일 오전 ‘심한 독감’을 이유로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삼성 특검’ 등 여론을 의식한 행보의 측면이 있지만, ‘삼성 사태’에 대한 이 회장의 고민이 깊은 것 같다는 관측이 나왔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이 회장 대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당선자와 회동에 참석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룹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오전에 참석 여부가 불확실했는데 오후에 이 회장이 최종적으로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의 이런 행보는 본격적인 활동 재개 측면보다는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예의’ 차원의 성격이 짙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은 “재계와 당선자와의 첫 대면인데 그룹 내부 문제로 이번 회동의 모양새가 구겨지는 것에 대해 삼성 쪽에서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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