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사회운동 구호들
‘명랑 서울’
1957년 서울 시장에 취임한 허정은 시정의 목표로 ‘명랑 도시 만들기’를 제시한다. ‘명랑’을 국민운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만큼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것이다. 서울중앙방송국은 2년 전인 1955년 ‘국민 명랑화 운동’의 첫 시도로 〈노래 자랑〉을 신설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스마일 배지 달기 운동도 국토의 명랑화를 위한 한 시도였다.
지난 60년 국민들 귀에 울려 퍼진 구호들은 그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국민들은 자나 깨나 “근면 자조 협동으로 ‘잘살아 보세’”라는 새마을 운동 구호를 들어야 했다. 열심히 일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국민들의 열망과 민족성 개조를 통한 근대화를 꿈꾼 위정자들의 의욕이 겹쳐 큰 울림을 낸 구호였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뒤 이 구호는 ‘더불어 잘살아 보세’로 바뀌었다.
산아제한도 매우 익숙한 구호였다. 60년대 구호는 ‘세 살 터울 셋만 낳고 단산하자’였다. 70년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으며 80년대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도시마다 인구탑을 세워 날마다 늘어나는 인구 수를 알려주고 영세민들이 불임 수술을 할 경우 금전적 혜택을 줬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 청산을 당위로 내세운 ‘역사 바로 세우기’(김영삼 정부)나 학벌 타파를 목적으로 한 ‘신지식인 운동’(김대중 정부), 범죄와 폭력에 선전포고를 한 ‘범죄와의 전쟁’(노태우 정부)도 당시엔 울림이 매우 컸던 구호였다.
하지만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이승만 재평가’를 외치는 우파의 저항에 직면해야 했고 신지식인 운동은 문민정부 이후 흐지부지됐다. 범죄와의 전쟁은 당시부터 정권안보를 위한 상징조작적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숙경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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