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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순이 죄는 살인 아닌 폭행치사”

등록 2008-01-02 15:14수정 2008-01-02 15:42

<인순이는 예쁘다>의 한 장면.
<인순이는 예쁘다>의 한 장면.
검사가 본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
김진숙 대검 부공보관, 법률적 ‘옥의티’ 꼬집
소년범, 품성·모범생·가정 형편 따져 가혹한 형기 선고않아
실제 상황이라면 범인 안될수도…누명쓴 인순, 재심청구 가능
“인순이의 죄는 살인이 아니라 폭행치사입니다.”

하루하루 사건과 피의자와 법전을 끼고 사는 검찰의 눈에는, 그저 울고 웃는 대상인 텔레비전 드라마도 간단치 않게 보인다. 검찰 전자신문 뉴스프로스에 ‘미디어 속 법률’ 코너를 연재하고 있는 김진숙(44) 대검찰청 부공보관이 2일 발간된 뉴스프로스 1월호에 최근 인기리에 끝난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를 법률적으로 해부했다. 고등학교 때 실수로 친구를 죽이고 감옥에 다녀온 인순(김현주). 전과자를 다루는 세상의 거친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순은 예뻤지만, 곳곳에 리얼리티의 ‘허점’이 있었다.

김 검사는 법률적 리얼리티와는 별개로 “드라마 속 인순이는 전과자에서 국민의 영웅, 천하의 거짓말쟁이로 극적 반전을 거듭하지만 오로지 자기 탓일 뿐,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는 없다”며 “그래서 인순이는 나쁘다. 그러나 사랑스럽고 예쁘고 훌륭하다”고 평했다.

살인죄와 폭행치사죄=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인순은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어느날 자신을 폭행하던 친구들에 맞서 몸싸움을 벌이던 인순이 내지른 주먹에 한 친구가 쓰러졌고, 숨진 채 발견된다. 인순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살인범으로 몰려 징역을 살게 된다. 인순에게 적용된 죄목은 형법 제262조, 제259조의 ‘폭행치사죄’. 폭행치사죄는 사람의 신체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성립되는 범죄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된다. 숨진 피해자가 먼저 폭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싸움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드라마는 인순이 출소한 뒤 자신의 전과 사실을 숨기는 과정을 질질 끌지 않는다. 인순은 세상의 편견 앞에 온전히 자신의 과거를 내밀며 “사람을 죽였다”, “살인전과가 있다”며 말하고, 번번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면 일부러 사람을 죽인 살인과 폭행치사는 다르다.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단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4조는 범죄를 저지른다는 인식 없이 부주의하게 혹은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원칙적으로는 처벌하지 않고, 특별 규정이 있는 때만 처벌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실로 인한 범죄라고 하더라도 그 실수로 인한 결과가 위중할 때만 처벌하도록 돼 있다.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경우는 형법 제267조의 특별 규정에 따라 처벌하지만, 운동을 하다가 팔을 휘둘러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때린 경우에는 폭행죄로 처벌 받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고의범과 과실범이 결합된 경우가 있는데 이를 ‘결과적 가중범’이라고 한다. 어떤 행동을 시작할 때는 고의로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큰 결과가 발생한 때에 형이 가중되는 것이다. 인순이의 죄목인 폭행치사죄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인순이 자신을 폭행하던 친구에 맞서 그 친구를 주먹으로 쳤을 때는 그 친구를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맞은 친구가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지는 ‘폭행죄’와는 달리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다.

인순의 어머니는 인순의 죄목을 ‘과실치사’라고 말하지만, 이 역시 법적으로 정확한 것은 아니다. ‘과실치사’는, 예를 들면 엄마가 생후 1주일된 아기와 함께 누워 자다가 아기를 눌려 질식사시킨 경우와 같이 순수하게 실수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와 같은 범죄를 말한다.


청소년 범죄의 처벌=인순은 고등학생 때 친구를 죽였다. 범죄를 저지른 나이가 20살 미만이므로 형법 혹은 소년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형법 제9조는 ‘14살 미만의 사람이 저지른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12살 이상 14살 미만의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형법 등에 의한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소년법 제4조, 제32조에 의하여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인순의 나이에 해당하는 14살 이상 20살 미만의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형법 등에 의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소년이 초범이고 살인, 강도와 같은 중범죄가 아닌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소년부에 사건이 송치돼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보호처분은 소년법 제32조에 6가지의 종류가 규정되어 있다. 그중 가장 중한 것은 소년원에 보내는 것이다. 보호처분을 받은 경우는 형사처벌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지 않아 전과로 남지 않는다. 14살 이상 20살 미만의 청소년도 물론 살인, 강도와 같은 중한 범죄를 저질렀고, 범죄전력도 있는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소년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소년법상 여러 특례규정이 있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초범이고, 범죄가 중하지 않으며, 정상 참작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처분을 할 수도 있다. 검찰청의 범죄예방위원으로 하여금 선도를 조건으로 용서를 해줄 수도 있는데 이를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라고 한다.

실제 인순이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의 폭행에 대항해 우발적으로 친구를 폭행, 사망하게 한 경우라면 그 범행동기라든가, 착하고 순수한 인순의 품성, 평소 성실하고 공부도 잘 했던 모범생,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단 둘이 어렵게 사는 형평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비록 피해자 가족과 합의가 되지 않았더라도 인순에게 청춘을 교도소에서 다 보낼 만큼의 가혹한 형벌을 선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소년범의 경우에는 징역형을 선고받아도 천안에 있는 소년교도소에 수감된다. 그 곳에서는 수감자가 원할 경우 고교과정을 이수할 기회가 제공된다. 자율학습을 할 수도 있고, 방송통신고 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교사가 학교처럼 수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교과과정을 마친 후에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학력이 인정된다.

누명 쓴 인순, 재심청구 가능=그러나 인순이 죽인 친구는, 알고보니 인순의 할머니와 인순이 거둬 보살피던 고아 근수가 죽인 것으로 드러난다. 인순이 친구들로부터 맞는 장면을 본 근수는, 인순이 친구를 때리고 도망가자 그 친구의 머리를 돌로 쳐 죽이고 만다.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 인순은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이다. 그러나 증언과 부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실제 수사에서는 인순이 실제로 범인으로 몰리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인순은 친구들 여러 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의 증언도 있었을 것이다. 사체에 대한 부검도 했을 것이다. 부검결과는 흉기로 머리를 맞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을 것이므로 그 흉기가 무엇인지, 인순의 폭행과 피해자의 사망이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을 정밀하게 조사했을 것이다.

결국 근수는 인순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인순은 그를 용서한다. 만일 인순이 근수를 용서하지 않고 본인의 무죄를 다시 재판으로 입증하고자 한다면 형사소송법 제 420조 제5호에 따라 재심청구가 가능하다. 정리/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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