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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인간사냥 희생자 기록이나마 남겨야”

등록 2008-01-03 19:33

아메미야 쓰요시 교수
아메미야 쓰요시 교수
일제 ‘조선인 농경부대’ 실체 복원 나선 아메미야 쓰요시 교수
일본 아오야마학원대학 명예교수(영어)인 아메미야 쓰요시(73·사진)는 1945년 봄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던 자신의 집에 자주 물을 길으러 오던 조선인 병사의 모습을 생각하면 62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쓰라려 온다고 한다.

당시 국민학교 5학년 어린이의 눈에 비친 조선인 병사는 나이(19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중학생같이 앳된 얼굴에는 얻어맞아 생긴 상처자국이 선명했다. 동네 어른들은 쉬쉬했지만 꼬마들은 서로 목격담을 주고받으며 어린 조선인 병사들의 존재와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동네 공회당이나 절, 학교에서 30~40명씩 생활하던 이들은 동네 인근 황무지를 개간해 식량을 조달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썩은 감과 밤을 주워먹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일쑤였다. 밤이면 일본군 고참들에게 얻어맞는 이들의 비명소리가 근처 민가까지 울려펴졌다고 한다.

60여년 전 앳된 조선병사들 ‘마음의 빚’
전후 기록 없애…동창생들 목격담 채록
“존재 알리는 게 일본인이 해야할 보상”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본토 결전’을 위해 식량과 항공기 연료용 고구마 등의 생산에 동원된 농경대(농경근무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후 관련 기록이 전부 소각 또는 소실되는 바람에 농경대의 정확한 부대편재와 규모, 활동상황 등은 규명되지 못했다.

농경대 조선인 병사들의 존재를 마음의 빚처럼 간직하던 아메미야 교수는 지난해초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농경대 규명에 본격 나섰다. 지난달 말 만난 그는 “더 늦기 전에 강제연행된 희생자를 만나 기록작업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 근교에 사는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불편한 몸을 이끌고 5차례나 고향 도요타시를 찾아가 초등학교 동창 등 20여명을 상대로 500시간에 걸쳐 목격담 등을 들었다. 지금은 녹음테이프를 풀어서 기록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도요타시 8곳에 200~250명의 농경대가 주둔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후 이들 조선인 병사가 시모노세키에서 귀국하다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상당수 죽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메미야 교수는 “내가 만난 소년병들은 모두 피부가 희고 징집연령보다 훨씬 어려 보여 납치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일본군 위안부처럼) 인간사냥이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어떻게 연행됐는지, 얼마나 굶주리고 괴롭힘을 당했는지, 어떻게 죽어갔는지 등을 정확히 기록해 알리는 것이 일본인으로서 우선 할 수 있는 보상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올해 말까지 증언채집을 마치고 농경대 기록집을 공공 도서관과 재일 한국·조선인 단체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데도 전쟁책임 규명에 뛰어들어 증언을 수집·기록·출판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1993~2004년 학생들과 함께 아오야마학원대학의 전쟁책임과 관련한 증언채집과 강연내용을 모아 7권의 책으로 펴냈다. 자신이 41년이나 재직한 학교의 치부를 들쳐내는 이런 작업으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기록해야 한다”는 그의 철저한 현장주의, 기록주의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왕성해지고 있다. 지난해엔 일본내 난민들의 비참한 상황과 일본의 비인도적 난민정책을 비판하는 증언집을 자비로 출판했다. 2004년 7월 대학 근처 유엔 관련 건물 앞에서 연좌시위하던 쿠르드 난민의 모습을 목격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일본에 쿠르드 난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난민문제는 인간의 생명·존엄에 관한 것으로 아오야마학원대학의 그리스도 정신과도 일치한다.”

아직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그는 농경대 피해자의 증언 청취를 위해 한국을 방문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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