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2월 12일 김대중 정부가 박정희기념관 건립 사업연장승인을 한 것을 규탄하기 위해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조희연(오른쪽) 성공회대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석주 기자
김대중도서관 지원 형평성 시비는 ‘사실’에 충실한가 정부가 김대중도서관에 3년 동안 보조금 6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일부 언론과 단체들이 뒤늦게 박정희기념관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인터넷 <독립신문>은 13일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발전 공로를 누구나 인정하고 그것이 민주화의 초석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기념관 설립을 위해 지원을 약속한 200억원조차 회수하려 하는 이 정부가 일부 좌익 시민단체의 의견에 끌려 대북 불법 송금 사건의 주범인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역사와 민족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간신문들도 이날치 지면에 ‘박정희기념관 예산은 취소됐는데…김대중 기념사업 60억 지원’(중앙일보), ‘정부, 김대중-박정희 기념사업 지원 두 모습’(동아일보) 등의 제목을 달아 두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김대중도서관에 3년간 60억원 지원’과 ‘박정희기념관 건립보조금 170억 환수’라는 별도의 기사를 나란히 처리하면서, 정부의 결정이 같은 날 동시에 내려진 것처럼 비치게 편집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보조금 환수 방침은 이미 지난해 11월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바 있다. ▶ 관련기사: ‘박정희기념관’ 보조금 200억 환수한다 날아가는 새와 떨어지는 물건을 두고 형평성을 비교할 건가? 그러나 형식과 논리가 어떠하든, 이들의 주장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다분히 정치적, 감정적 논리에 따른 것일 뿐이다. 정부가 박정희를 좋아하든 미워하든, 아니면 김대중을 좋아하든 미워하든, 두 사업에 대한 정부의 결정은 형평성을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두 사업에 대한 지원 자체는 모두 법률에 의거한 것이고, 박정희기념관 보조금 회수는 법이 정한 정부의 의무사항이다. 이들의 주장은 마치 새의 비상과 중력에 의한 물건의 자유낙하를 단순비교하며 형평성을 따지는 것과 같다. 정부는 지난 12일 오전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대중도서관 사업에 6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전직대통령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박정희기념관 역시 같은 법에 따라 지원됐다. 행자부는 김대중 정부 시절 ‘500억원 국민모금’ 충족을 전제로 국고 200억원 지원을 약속하면서 사업 기간을 1999년 7월부터 2003년 2월28일까지로 못 박았다. 그 뒤 박정희기념사업회는 지난 2003년 2월 정권교체기를 틈타 기습적으로 사업기간을 2004년 10월 말까지 연장받았다. 하지만 이때까지 사업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건립사업 기간 연장을 2009년까지 연장하고, 전체 사업비의 60% 이상을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하는 것을 뼈대로 한 축소 계획안을 행자부에 냈다. 이 사실은 지난해 8월 <한겨레>에 의해 ‘폭로’됐다. ▶ 관련기사: ‘박정희 사업’ 2009년까지 또 연장신청 %%990002%%
형평성을 따지지 말고 각각의 사업 타당성을 따져야 박정희기념관 건립사업은 애초 국민모금 500억원, 국고지원 208억원 등 모두 709억원(사업회회비 1억원 포함)을 마련해 기념관 건립에 214억원을 쓰고, 나머지는 운영비(300억원), 생가보존(160억원), 경상비(35억원)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 차례 사업 기간을 연장했는데도 102억원밖에 모금하지 못했으며, 모금액도 90% 가까이가 주요 경제단체 등에 집중돼 국민모금이라는 애초 취지도 달성하지 못했다. 현행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 제21조에는 “사업수행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사업추진이 부진할 때 교부금 전부 또는 일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사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회수는 이 법에 따른 적법한 행정행위였으며, 보조금을 회수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법을 위반하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셈이 된다. 물론 두 사업에 대해 각각 보조금 지원의 정치적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대중 정부가 박정희기념관 건립 사업에 대한 국고지원을 결정했을 때도 시민사회의 반발은 거셌다. 지금은 김대중도서관 사업의 정치적 타당성을 따질 수 있는 때이다. 또, 김대중도서관 사업이 박정희기념관 사업처럼 ‘꼼수’에 의존한다면 법에 따라 보조금을 거둬들이는 게 당연하다. 형평성은 김대중도서관 사업이 사업수행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사업추진이 부진한 데도 보조금을 거둬들이지 않을 때 따지는 게 맞다. 김대중도서관 사업의 경우 총사업비 124억원 중 48%에 해당하는 60억원이 2007년까지 지원된다. 이 돈으로 국내·외 사료 수집 및 출판 등 사료사업, 연구총서 발간 등 연구사업, 평화학 최고위과정 운영 등 교육사업,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 국제학술회의 등 국제협력사업과 같은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조건이다. 형평성을 따지고 싶은 쪽에서는 2007년까지 이 사실을 꼭 기억해둘 일이다. <한겨레> 사회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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