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목숨 건 절규 왜 줄잇나
해수부-충남도 긴급지원금 싸고 언쟁만
한 총리 “삼성이 저지르고 정부에 미뤄”
정권교체기 민생공백…주민만 ‘죽을판’
해수부-충남도 긴급지원금 싸고 언쟁만
한 총리 “삼성이 저지르고 정부에 미뤄”
정권교체기 민생공백…주민만 ‘죽을판’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의 수습 방안을 놓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 가해 기업의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다. 더욱이 정권교체기라는 특수 상황에서 ‘가는 권력’은 상황을 장악하고 관리할 힘이 없고, ‘오는 권력’은 현정부에 모든 것을 맡겨놓고 개입을 꺼리는 형편이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태안 주민 생계용 긴급지원금 300억원을 충남도에 내려보냈다. 하지만 충남도는 30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이 돈을 배분하지 않았다. 이런 사이에 태안 주민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현지 주민들은 이런 불상사가 줄을 이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20일 “1차 정부지원금 300억원은 푼돈이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해양수산부에 30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구했으나 이를 수용하지 않아 지원이 늦어졌다”며 해양수산부를 비난했다. 하지만 해양부는 충남도가 긴급 지원금과 국민성금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생계가 막막한 주민들에게 풀지 않는 바람에 민심이 들끓고 있다고 충남도와 이 지사를 비판했다. 이 지사와 강무현 해양부 장관은 최근 지원금 지급 문제를 둘러싸고 험한 말로 언쟁까지 벌였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충남도는 뒤늦게 정부 지원금 300억원과 충남공동모금회 접수 국민성금 158억원, 충남도 예비비 100억원 등 모두 558억원을 21일 기름유출 피해를 본 서해안 여섯 시·군에 전달하기로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중앙 정부와 충남도 사이에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배경에는 충남도지사가 신정권 쪽의 한나라당 사람이고, 충청권에서 이회창 신당 쪽 세력이 커지고 있는 등 정치적 역학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름 유출 사건의 주요 당자인 삼성중공업 쪽의 무책임한 자세를 비난하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열린 국정현안정책 조정회의에서 “문제는 삼성이 저질러 놓고 책임은 정부에 미루고 있다. 나중에 법적 책임을 지더라도 그 전에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삼성의 무성의를 비판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삼성 쪽 인사를 만나 태안 여론이 심상찮으니 보상금을 미리 지급하는 등 대책을 검토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으나,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지금이 정권 말기가 아니라면 기업이 정부의 말을 이렇게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구 충남지사도 “삼성 등 관련 회사들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관련 회사들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피해 주민들의 시름을 덜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태안 주민들은 23일 서울로 올라와 삼성 본관을 에워싸는 인간 띠잇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에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1차 배상책임이 선주사 보험사에 있는 만큼 삼성중공업에 타깃을 맞추기보다는 어민들이 최대한의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삼성 쪽의 법적 책임이 명확해지면 단순한 피해보상뿐 아니라 고용창출을 위한 공장 이전이나 지역 발전기금을 내놓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대전/손규성 기자, 이지은 이형섭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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